미 행정부 내 혼선 '비핵화 시간표'...부상하는 미군 유해 송환 이벤트
김정은-시진핑 밀월, 신속한 비핵화 이행에 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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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장관은 5일 오전 2시(미국 동부 현지시간)께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떠나 경유지인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올린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를 향한 우리의 노력을 지속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행 목표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 미 국무부, 북한 비핵화 문제에 매달려
이번 평양행 성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인 11월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후속협상 책임자로 지목한 폼페이오 장관의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미국 언론들이 미국 국무부 전체가 북한 비핵화 문제에 매달려 있다고 전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번 평양 북·미 협상의 최대 쟁점은 ‘핵 신고 리스트’와 ‘비핵화 시간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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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핵 신고 리스트’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꼽힌다.
미국 싱크탱크 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4일 폭스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핵 프로그램에 관한 간결한 신고와 핵탄두 및 미사일의 전체 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지난 3일 보도된 자유아시아방송(FRA) 인터뷰에서 “무기 및 관련 시설 신고를 받는 것이 비핵화 논의의 첫 단계”라며 “북한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핵화 논의를 시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플루토늄·우라늄·미사일·생화학 무기·대량 파괴무기 등 모두에 관한 신고가 먼저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신고가 있다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북한의 구체적 신고 내용으로 △핵탄두의 수와 위력 및 보관 장소 △원자로의 수와 지하를 포함한 보관 장소 △핵 물질 생산 원심기의 수와 기술 수준 및 보관 장소 △핵 프로그램 관여 과학자 및 인원에 관한 상세한 자료 △생산한 핵물질의 양 및 핵 폐기물 보관 장소 총목록 △시리아 등 북한의 국제 핵 거래 총목록 등을 제시했다.
뉴욕타임스(NYT)도 1일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비핵화 일정을 가지고 평양에 도착할 것”이라며 “이는 북한이 모든 무기와 생산시설, 미사일을 신고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다”고 전했다.
◇ 미 행정부 내 혼선 ‘비핵화 시간표’
‘비핵화 시간표’와 관련해선 국무부와 백악관 및 국방부 고위 관계자 간 혼선이 드러나는 모양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1년 이내 시간표’ 발언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부 인사들이 시간표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그런 시간표를 제시(provide)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볼턴 보좌관은 1일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가까운 장래에 북한과 모든 대량 살상무기와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1년 이내에 어떻게 폐기할 것인지 협의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나워트 대변인의 ‘시간표 부인’은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달 24일 “나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두달, 여섯달 등의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 북·미 실무협상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시간표 비설정’이 미국 측의 기본 입장이라는 데 힘이 실린다.
빅터 차 석좌도 “사실 시간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며 ‘핵 신고 리스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폼페이오 세번째 평양행에 대한 회의적 전망
이번 폼페이오 평양행에 대해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전망은 회의적이다.
북·미 정상회담 공동선언 이후 비핵화를 향한 진전이 전혀 없고, 김일성·김정일 위원장 때부터 합의를 깨고 시간벌기 전략을 구사한 북한의 전력이 주요 원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옵션 고려에 반대했던 ‘대화파’ 대북 전문가들도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울러 북한과 중국이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북한 비핵화의 신속한 이행을 요구하는 미국에 악재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4일 베이징(北京)을 방문 중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과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급속한 결과를 기대해선 안 되며 이는 긴 과정’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이 이날 미국 행정부 당국자들은 인용, 미국이 기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 접근법에서 한발 물러나 판이 깨지지 않게 상황관리를 하면서 현실적 접근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려 한다고 전한 것도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 성과에 대한 회의적 전망과 관련이 깊다.
◇ 부상하는 미군 유해 송환 이벤트
이에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에서 ‘핵 신고 리스트’ 성과 대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한국전 전사 미군 유해송환 성과만 거둘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군 유해 200구 안팎은 1차분 유해 전달을 위한 실무 작업이 사실상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체류 기간에 송환 이벤트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고, 이번에 국무부 출입기자 6명이 동행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는 분석도 있다.
유해 송환은 미국 국민의 정서를 건드리는 문제로 폼페이오 장관의 비핵화 임무가 사실상 실패하더라도 이를 무마할 수 있다는 성과물이 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5일 유해송환이 예상대로 이뤄질 경우 폼페이오 장관으로서는 설사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속도와 범위에 있어 북한과 간극을 좁히는 데 실패하더라도 이번 방북에서 가시적 성과물을 확보하는 의미가 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주의적 문제에 대한 관심 집중으로 자칫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켜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