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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중남부 델랑가나(Telangana)주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중앙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로히드 베물라(Rohith Vemula) 연구원이 지난 17일 기숙사에서 자살한 것이 발단이 됐다. 베물라 연구원은 지난해 8월 다른 동료 4명과 함께 대학당국으로부터 연구지원비 월 2만5000 루피(44만6000원) 지급 중지와 기숙사 퇴실 통보를 받았다.
이에 베물라 연구원은 부총장 면담을 요구하면서 조치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을 요구해 왔고, 올해 초부터 농성을 벌여왔다. 그는 이날 저녁 향후 대책을 논의한 후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내 영혼과 육체의 갭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내 탄생은 나의 치명적인 실수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의 고독으로부터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어린이”라고 썼다. 실존적 고민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에 대해 스미리티 이라니(Smriti Irani) 인적자원부 장관은 20일 ‘유서에는 국회의원이나 정당에 관한 내용이 없다’고 지적한 뒤 “이 문제를 카스트 간 투쟁으로 몰고 가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진실은 달리트(Dalit·불가촉천민)와 비달리트 간 이슈가 아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베물라 연구원과 함께 통보를 받은 4명이 모두 달리트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존적 고민’이 카스트라는 ‘사회 문제’와 직결된다는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베물라 연구원의 동료와 야권은 인적자원부가 공문을 보내 대학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적자원부가 집권 인도국민당(BJP) 소속 반다루 다타트레야(Bandaru Dattatreya) 고용노동부 장관의 편지를 받고 베물라 연구원과 동료 4명에 대한 조치를 내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앞서 다타트레야 장관은 지난해 8월 인적자원부에 보낸 편지에서 베물라 연구원 등이 난다남 수실 쿠마르(Nandanam Susheel Kumar) ABVP 간부를 폭행했는데도 대학당국은 ‘침묵하는 구경꾼’으로 있다며 “대학이 카스트주의자, 극단주의자와 반정부 정치활동의 소굴이 됐다”고 했다.
ABVP는 힌두 민족주의 단체이면서 BJP의 모체인 민족봉사단(RSS)의 학생조직이다. BJP의 공식 청년단체 인도청년전선(BJYM)과 공동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이에 인적자원부는 대학에 5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내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인적자원부는 공문이 VIP의 진정에 대한 조사 진행상황을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며 대학당국의 조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데라바드 중앙대학의 공동행동위원회(JAC)는 그의 자살을 ‘제도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데모와 농성을 이어갔고, 이에 전국의 대학생 조직이 데모에 동참하고 있다.
야권의 움직임도 발 빨라졌다. 라훌 간디(Rahul Gandhi) 국민회의당(INC·콩그레스) 부총재는 지난 19일, 아르빈드 케지리왈(Arvind Kejriwal) 델리 수도직할지(NCT) 시장(Chief Minister)은 21일 각각 대학을 방문, 베물라 연구원의 모친 등 유족들과 대학생들을 만나 그의 죽음이 사실상 ‘살인’이라며 관련 장관의 사임과 아파 라오(Appa Rao) 대학 부총장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했다.
경찰은 지난 18일 다타트레야 장관, 라오 부총장, 그리고 ABVP 회원 2명을 불러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s·불가촉천민)와 지정 부족(Scheduled Tribes)에 대한 잔악 행위를 금지한 법령’을 위반했는지 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개정된 법령에 따라 이뤄진 최초의 조사라고 한다. 개정법령은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배척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