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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폐지, 즉 로스쿨독점주의자들의 주장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신뢰보호의 원칙이다. 그러나 사시존치가 로스쿨 졸업 변호사나 재학생, 장래 입학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정원이나 자격요건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이 보장하라는 신뢰는 직업적 이익을 보장하라는 집단이기심의 소아적 주장에 다름 아니다. 사시폐지가 국민의 약속일까? “로스쿨, 잘하겠습니다”가 국민과의 약속이었을까? 불공정과 불투명으로 신뢰를 저버린 쪽은 로스쿨이다. 증거가 있냐고? 필자는 법적인 용어로 로스쿨 입시 불공정은 넉넉히 추정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학교가 서울사대부고 졸업생들을 우선 선발한다는 것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2009-15년 사이 로스쿨 25개교 중 서울대를 비롯한 11개 로스쿨이 자기 학부 출신을 가장 많이 선발하였다. 이미 서류전형 단계부터 가산점을 임의로 주는 등 자의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자의성이 전화 한통과 인간적 정실관계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입시 불공정, 불투명은 이 사례로서 단적으로 입증된다고 할 것이다. 합리적 이유없이 자교출신 최다선발 자체만 하더라도 로스쿨들은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게다가 로스쿨 중 이른바 스카이 로스쿨들에 의한 학교 서열화 폐단은 사법시험체제와 비할 바 없이 심해졌다.
둘째는 장학금을 통한 사회적 약자 배려이다. 필자도 이 점은 로스쿨이 갖는 장점 중의 하나로 인정한다.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연소득 2,600만원 이하 재학생이 22.3퍼센트라면서 등록금 전액지급 대상자는 15.8퍼센트라고 한다. 나머지 월 소득 217만원 이하의 가구 학생 6.5퍼센트는 자기 돈 내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가능한 건지 의문이고, 과연 특별전형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셋째는 이른바 ‘개천 용(龍) 불필요설’과 ‘법조 카르텔(?) 방지설’인데 이건 웃고 넘어가는 정도로 족할 것이다. 지금 아무도 법조인을 용으로 말하지 않는다. 전문직과 공직에 들어가는 길을 봉쇄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할 뿐이다. ‘용’이 아니라면서 굳이 이 길을 대학원제로 봉쇄하고, 내가 키워야만 제대로 된다고 우기는 심보가 참 고약하다. 법조카르텔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 로스쿨교수들이 보여주었던 일사불란한 변시 출제 거부 결의와 학생들의 집단자퇴, 시험거부 행위를 통해 드러난 협박행위에 비할까. 로스쿨독점체제로 접어들 때 계층 카르텔, 신분사회가 우려된다.
현재 로스쿨 재학생들 소득분포를 보면 소득 5, 6, 7 분위를 다 합해야 소득 10분위, 즉 최상위 월 734만원 초과 가구 재학생 비율과 비슷해진다. 10여개 안팎의 로스쿨들의 경우엔 9, 10분위 소득 재학생들이 40퍼센트에 육박한다. 위 지표가 보여주는 것은 명백하다. 지금 로스쿨은 중산층과 서민을 희생하여 최상위층 자제들의 인생 스펙을 쌓아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로스쿨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구조적 문제는 대학원제 로스쿨로 만든 설계의 원죄에 있다. 군법무관 통한 병역 혜택, 판검사 공직 독식, 대기업과 공기업 입사 우대, 6-7급 일반 공무원 특채 등 로스쿨 졸업생들이 전방위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휩쓸 때 보통 가정의 자식들이 그나마 어떻게 꿈틀거리기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이 사법시험이다. 헌법 정신은 분명하다. “모든 국민에게는 꿈틀거릴 기회라도 주어져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