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셔먼 발언 파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국 외교당국의 인식을 보여준 것은 물론 미·일 밀월관계, 나아가 중국과의 관계가 강화되는 한국에 대한 견제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국무부는 2일(현지시간) 셔먼 차관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의 정책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셔먼 차관의 발언이 나온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미국 국무부에까지 일본의 논리, 또는 로비가 확산됐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앞서 미국 국무부에서 동북아 지역을 담당하는 대니얼 러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해 말 한·일관계 개선이 올해 미국의 우선순위 정책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이 한·미·일 미사일 방어(MD) 협력 강화 등을 위해 한·일관계 개선을 직접적 또는 우회적으로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여기에는 한·미·일 3자 간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목표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셔먼 발언에 비춰보면 한·일관계 개선에서 미국은 한국보다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과거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우경화를 용인하겠다는 의도가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조기 체결, 안보분야에서는 집단자위권 문제를 위해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친미 일변도의 외교노선을 추구한 것도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이 기존에 밝혀온 과거사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했다”는 말만 반복하며 미국을 향해 강력한 대응자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정부는 셔먼 발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느냐’는 질문에 “과거사 문제에서 미국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고 또 우리와도 커다란 인식의 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는 그런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을 우리는 평가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 안팎에서는 셔먼 발언 파문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좀 더 확실히 미국에 전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이 미국에 힘입어 과거사 문제를 전혀 반성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한·일관계에는 미래가 없다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올해 일본이 내놓을 ‘아베 담화’에 적절한 과거사 인식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일 3각 협력도 크게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외교 당국에 주지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반성하도록 추궁하는 방향으로 미국 공식입장이 정해져야 한·미·일 3각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며 “미국이 한국에 대해 과거사를 따지지 못하게 하면 반미 감정만 커지고 한·일관계 개선도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