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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하늘나라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갖고 가는 법(空手來空手去).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이 움켜쥔 게 어느 정도 되거들랑 당신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당신 추억의 씨앗을 뿌려 사람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그게 바로 천국이지.
생(生)이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뜬구름의 사라짐이라.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물 위를 걸어가니 대지(大地)와 허공(虛空)이 갈라지는 구나.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니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이상은 서산대사의 시비(詩碑)에 있는 글이다. 불교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렇다.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인 동시에 너와 나의 헤어짐이다(生者必滅 會者定離). 이별 없는 인생이 없고, 이별 없는 만남도 없다. 살아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오고, 만난 사람들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게 아니다. 여행 왔던 사람마다 여정이 끝나면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가듯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남겨놓고 몸만 일어나 떠나가야 된다. 너무나 분명한 진리인데 사람들이 잊고 살 뿐이다.
죽는 게 슬픔이 아니라 안 죽을 줄 알다가 죽는 게 슬픈 일이다. 정든 가족·친구·고향·물건들과 영원히 헤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슬픈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것이다. 삶이 곧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실존의 한계상황이다. 내가 60년 살았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어진 시간에서 60년을 죽었다(소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게 운명이요, 절대적인 한계(죽음)다. 그래서 누구나 죽음 앞에 서면 숙연해지고, 진지해진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언젠가 떠나야 하니까 미리 떠날 준비를 하는 게 도리다.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태연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항상 죽음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떠나더라도 아쉬움 없이 조용히 웃으며 떠날 수 있도록 사생관을 정립해야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예고(豫告)없이, 마치 도둑이 임하듯 그리고 예외(例外)없이 찾아온다.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리면 내가 하던 일 그대로 놓고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나 혼자서 떠나야 한다. 외로운 여행길이 될 것이다. 배웅은 하되 그 누구도 동행은 할 수 없다. 인생에 대한 애착과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삶을 정리하고 관계를 점검하고 애증을 해결해야 한다. 오늘이 어쩌면 나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만남은 최초이자 최후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해야 한다. 따라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
이제껏 살아온 인생길에서 즐거워 웃은 날이 얼마였던가? 남을 속이고 자기에게 죄지은 삶이 얼마였던가. 장사하는 사람, 자기 물건 나쁘다고 안 할 것이고, 직장에서 동료 미워해본 일 적잖게 있었을 것이다. 가진 자는 편안함에 안주하겠지만, 없는 자는 조금 더 불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1등석 타고 가나 3등석 타고 가나 우리가 탄 비행기는 같은 시간에 이륙하고 같은 시간에 착륙하니 결국 그게 그것인 셈이다.
인간은 병이 들어 고통을 받을 때에야 뉘우치고 반성하며 후회하게 되는데 이 또한 인생무상의 한 토막 현상이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난 뒤에도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고 강과 바다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파도가 일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있어도 없어도 산천은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세상이 다 그런 것이다. 너무 집착해 피곤해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