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이병화 기자 |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는 정작 지난 4일 오전 국민의힘 긴급 의원총회에선 결론을 못 낸 사안이다. 한 대표가 제안한 3가지 안건 가운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해임과 내각 총사퇴는 무난히 채택됐지만, 대통령 탈당 건은 격론 끝에 유보됐다. 그런데 이날 오후 삼청동 회의에서 한 대표가 독단적으로 탈당을 요구했다. 친윤계 한 중진의원은 "대통령이 탈당하면 우리가 여당이 아닌데 탄핵을 막을 명분이 없다"며 "탄핵을 막겠다면서 탈당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우선순위로 봐도 대통령 탈당 요구보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위한 행정·사법 탄핵의 극단적 방탄 국회가 이번 (계엄) 사태를 촉발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명히 짚었다. 반면 한 대표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야당보다 더 빨리 계엄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이 사태를 촉발한 야당의 입법·탄핵 폭주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한 대표는 4일 윤 대통령과의 면담 후에도 "대통령은 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상계엄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며 "대통령의 인식은 저의 인식과, 국민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었다"고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았는데 한 대표가 벌써 대선놀음을 시작한 것 아닌가. 15대 대선을 두 달 앞둔 1997년 10월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는 아들 김현철 씨 구속으로 인기가 급락한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해 탈당을 요구했다. 2007년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지낸 정동영 의원도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대선에서 패배했다. 우리나라 역대 2인자가 대통령과 차별화해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것은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 대통령이 2인자를 지지해 준 경우에 한했다. 한 대표의 탈당 요구는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