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울푸드 ‘뿔소라’ 공수해 향수 달래는 사람들

기사승인 2024. 09. 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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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경기북부-의정부서 모임 갖는 제주출신 '조쿠제기' 회원들
조쿠제기는 애기 뿔소라를 뜻하는 제주어로 즐겨먹던 해산물
회장 10년째 강희중 병원장 "고향사람 서로 돕고, 이웃끼리도 서로 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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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왁에 담겨있는 제주 뿔소라와 자연산 전복을 의정부로 공수하여, 2022년도 조쿠제기 송년회를 하고 있다. 10년째 회장을 맡고있는 강희중 포천강병원 원장이 송년사를 하고 있다. /조쿠제기 총무 제공
확 덜 도르멍 옵써 '구쟁기' 올라 왐수다(뿔소라가 올라왔으니까 빨리 모이자)

제주도 출향민들은 각지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조직과 선거로 선출하는 도민회 같은 큰 조직을 제외하고, 순수한 모임을 만들어 제주의 맛과 풍습을 이어가는 작은 모임 이야기를 살펴 봤다.

1995년쯤 의정부에서 제주출신 교사들 모임이 있었다. 그리고 이용 씨가 주도하는 선배들 모임이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모임들이 현재는 100명이 넘는 제주인의 모임이 되었다.

이 모임은 구좌읍 출신 이용 씨와 서귀포시 대정읍 출신 고등학교 체육교사인 김동신(총무)씨가 적극적으로 주도해 2001년 출범한 '조쿠제기' 모임이다.

30년째 총무를 맡고있는 김동신씨는 "40~50년전에는 제주에서 포천, 의정부, 연천 등을 찾아가려면 먼 길이였다. 특히 당시에는 같은 직종에서도 제주 동향인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모임은 오롯이 제주도 향수를 치유하는 제주의 대표적인 해산물인 뿔소라(제주어 구쟁기)를 매개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초대 회장 이용씨는 "뿔소라는 성장 과정에서 작은 뿔소라를 '조쿠제기'라고 하는데, 모임 성격도 어릴적 추억에서 제주를 기억하자는 뜻으로 작명했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아이 3~4명이 모여 개구쟁이 짓을 하는걸 보면 "조쿠제기 만 헌것들이 조팻짓(개구짓)햄쪄"라고 어른들이 말한다. 작은 뿔소라 만한 놈들이 개구쟁이 놀이를 한다는 뜻이다.

좀 더 살을 붙이자면 어린 뿔소라가 바다에서 살아남아 큰 소라가 될 때까지 험난한 삶을 이겨내야 하듯이, 어린이들을 응원하면서 제주를 이어갈 보배로 성장하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이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북지지역(의정부, 포천, 연천, 양주)과 서울 노원구 제주 출신 모임은 형식이 없고, 정치색도 없고, 오직 구쟁기 먹으멍(먹으면서) 그리운 향수를 치유하는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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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쿠제기 모임 강희중 원장이 운영하는 포천 강병원./부두완 기자
이 모임은 한 번 회장을 맡으면 최소 10년은 한다. 초대 회장은 국정원 출신 이용 씨가 10년 넘게 맡았다. 그리고 강희중 포천 강병원 원장 지난 2014년 부터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당시 강회장은 소임을 맡는 자리에서 '조쿠제기' 식구들은 서로 도와가며, 즐겁고 행복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며 10년째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10년째 조쿠제기들을 위해 제주에서 연 2~3회 경기북부로 뿔소라를 공수하는 강원장을 지난 2일 만났다. 여전히 바쁜 와중에 진료중인 장면만 사진을 촬영하고, 진료가 끝나는 시간을 이용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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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전문의인 강희중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부두완 기자
기다리는 동안 병원 내부를 들러봤는데 환자들이 끝임없이 방문해 강원장과 인터뷰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운영하는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가 위탁운영하는 서울특별시 보라매 병원 3곳의 임상 자문을 하니 쉴틈이 없어 보였다.

- 병원 진료는 몇시부터 하는지.

"월~금요일은 오전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해서 오후 5시까지 한다. 늦어지면 응급실에서 6시까지도 한다. 환자는 하루 150명에서 200명 정도다. 토요일은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진료한다. 때론 점심을 거르며 할 때도 많다.지역 특성상(최대 30km 이상 먼 곳에서도 내원하는 환자들도 많음) 오신 환자분은 다 진료를 해야 한다."

-제주 출신이 포천에 병원을 개원한 것은 참 이례적이다. 어떻게 정착 했는지, 특별한 연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과정을 수료한 뒤 경기도 공기업인 포천의료원에 입사해 진료부장을 거쳤다. 지역 종합병원에서 부원장으로 진료하다가 2001년도 포천 현재의 자리에 강병원을 개원했다. 직장 따라 왔다가 포천 지역에 그대로 눌러 앉아 개인병원까지 문 열었다. 포천이 제 2고향인 셈이다."

강병원은 현재는 응급센터 까지 갖춘 병원으로 포천, 강원도 철원, 연천 등에서도 환자가 찾아온다고 병원 관계자가 귀띔했다.

-'조쿠제기' 모임 회장을 10년째 맡아 고향사람들에게 제주의 해산물 맛을 공수 해주는데 매번 120kg 이상이면 엄청 많은 양인데 사모님이 알면 싫어 하지 않나요. 그리고 모임은 소고기집에 자주 하는데 식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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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구쟁기 3000kg과 소고기 밥상을 제공하는 사실을 사모님이 아느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당연히 모르지, 알아도 우리 집 사람은 다 이해해주지라고 웃는다./부두완 기자
"첫 직장을 다닐 때 포천까지 오려면 교통사정도 원활하지 않았고, 포천에서 생활하다 보면, 포천은 산과 하천으로 감싸안은 군사도시이고 도농복합지역이라 제주와는 완전 다른 풍습과 문화를 갖고 있다. 특히 먹거리는 너무 다르다.

반면에 우리 고향 제주는 섬 전체가 바다로 둘러 쌓여 한라산 아래로 초지가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초지 면적 중 40%가 제주도다. 그래서 목장도 많고, 농사 짓기엔 매우 어려운곳이라 농작물 보다는 쉽게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이 해산물였다.나는 고향이 조천읍 신촌리 바다 마을이다. 어른들은 바다는 손을 내밀면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내주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직업군이 해녀이다.

제주인이 가장 그리워하는 해산물은 자리돔과 뿔소라이다. 요즘은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서민들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조쿠제기 모임에서 모두가 즐거워하고 고향 소식을 서로서로 나누면서 고향 해산물을 먹으며 향수를 달랜다."

강 원장은 아내도 제주 출신이라 모든 걸 이해하고, 응원해준다고 귓속말 했다.

-타향인 육지에서도 남몰래 선행을 베푼다고 하던데요.

"아니다. 나의 형편 정도면 다 하는거 아니냐."

더 이상 대답이 없어서 개원 초기부터 함께 한 현덕수 총무과장에게 자료를 달라고 했다.

현 과장은 (원장님 알면 싫어 한다면서) "사회공헌을 매년 현금으로 수천만원씩 기부하며, 1만여건의 봉사진료를 하셨다. 남모르는 미담도 많다. 복지에도 관심이 많아 모든 직원은 정규직이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는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면 도움 받는 곳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어 절대 공개를 못하게 한다며 말을 아꼈다

-조쿠제기 모임은 제주도 인재들의 플랫폼이라고 하는데 어떤 인재들이 있나.

"국가를 지탱하는 사법부, 행정부에서 일하는 훌륭한 인사들이 많다, 많은 판사와 검사들이 유독 서울 북부와 경기도 북부 지역을 거쳐간다. 현재 춘천지법원장인 부상준 판사와 육군인사사령관을 지낸 고태남 장군, 경찰청 범죄예방대응 국장인 고평기 치안감…특히 교육자들은 가장 많은 직업군 중 하나다, 열명이 넘는 교장 선생님, 그리고 중소기업 사장님들도 많다.

여기서 거쳐간 인물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수원지검 변진환 부부장검사이다. 의정부지검을 거쳐 제주지검으로 가서 4·3사건 직권재심 검사를 맡아 많은 문제를 해결하여, 많은 피해자들이 빠르게 명예 회복되었다고 한다. 당시 모든 수사기록이 제주도 사투리로 기록되어 제주출신이 아니면 해석이 불가능하였다고 제주도 언론이 밝혔다. 특히 피해자들이 명예회복 후 고맙다고 말하면 그들에게 '국가가 미안해야 한다'는 말로 심금을 울렸다. 그 말 한마디가 바로 조쿠제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언제까지 조쿠제기 회장을 할 생각인가 물었다. 강원장은 계속 웃기만 했고 동석한 김동신 총무가 제주도 '구쟁기'가 다 떨어 질 때까지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강원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서로 도와가며, 즐겁고 행복한 만남을 갖자고 했다. 그는 "내가 소임을 맡은게 조쿠제기 정신이다. 우리 제주도를 사랑한다. 우리 도민과 재외 도민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자라나는 우리 제주 후손들이 본 받을것"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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