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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WP “한국전쟁 성탄절 기적...59인승 선박, 1만4000명 난민 어떻게 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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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3. 12. 25. 06:07

WP, '한국전쟁 성탄절 기적' 흥남철수작전 집중 조명
"59인승 선박이 1만4000명 난민 구출"
선장, "어뢰 공격시 배, 장례식장 장작더미 될 위험성"
선장, 퇴역 후 베네딕트회 수사로 변신...사후 시성 절차
흥남철수작전
1950년 12월 22일 북한 피난민들이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탑승하고 있다./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성탄절 전날인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전쟁의 크리스마스 기적, 59인승 선박이 1만4000명의 난민을 어떻게 구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흥남철수작전을 재조명했다.

흥남철수작전은 1950년 11월 말 25만명의 북한·중공군에 의해 미국 등 유엔군 약 10만명과 피란민 9만명이 포위되자 12월 9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과의 해상 철수 명령에 따라 투입된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연료·트럭·탄약 등 군수물자 이송이라는 당초 임무 대신 북한 피란민 약 1만4000명을 태우고, 거제도에 도착한 사건이다.

◇ WP "한국전쟁 성탄절 기적, 59인승 선박이 1만4000명 난민 구출"

WP는 이 기사에서 레너드 라루 빅토리호 선장(1914년 1월 14일∼2001년 10월 14일)을 재조명했다. 라루 선장은 어릴 적부터 공해에서의 복무 이야기에 매료돼 20세에 입대,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6년 동안 대서양 전투에 참전, 소련 항구와 북극 하역을 항해했고, 독일의 U보트와의 전투에서 생존했다.
빅토리호는 당초 1950년 6월 제임스리버 예비 함대에 위탁해 해체될 예정이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해상수송지원단(MSTS)의 요청에 따라 미국 육군과 공군의 자원과 함께 연료·트럭·탄약 등 군수물자를 태평양 전역으로 수송하는 군함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한국에 재배치됐다.

라루 선장은 1950년 11월 말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중공군 12만명에 포위된 미국 해병 1만5000여명 등 미군에 대한 보급을 위해 12월 22일 흥남항에 도착해 10만명의 피난민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라루 선장은 빌 길버트 WP 기자가 2000년 발간한 저서 '기적의 배'를 통해 "해안에서 쌍안경으로 안타까운 장면을 목격했다"며 "부두에는 탈영과 미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중공군에게 참수 위협을 당한 북한 난민들이 가득 차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빅토리호는 승조원 35명과 장교 12명, 그리고 승객 최대 12명 등 59명을 태울 수 있도록 설계된 길이 450피트(137.16m)·폭 50피트(15.24m)의 화물선이었다.

흥남항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 24일 흥남철수작전의 이후 폭파되는 함경남도 흥남항 모습./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라루 선장, 군사물자 버리고, 피란민 태워 "어뢰 공격시 배, 장례식장 장작더미 될 위험성"

라루 선장을 군사물자를 버리고, 기중기 팔(boom)과 즉석 제작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웠다. 이로써 빅토리호는 흥남에서 군인과 피란민을 철수시키기 위해 투입된 150척의 선박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흥남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한 선박으로 기록됐다. 특히 빅토리호는 '한 척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구출한'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난민들은 가슴을 맞대고 서 있거나 갑판의 기계와 제트 연료 드럼통 위에 누워 있었는데 "불꽃이 튀어 배를 장례식장 장작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고 라루 선장은 회상했다.

라루 선장은 1960년 '디스위크' 인터뷰에서 부산까지의 28시간에 걸친 항해에 대해 "우리는 탐지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함선으로 적의 기뢰가 매설된 해역과 마주하고 있었다"며 "우리는 인근에서 작전 중인 공산주의자 잠수함이 우리를 쉽게 발견하고, 어뢰로 침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빅토리호의 하부 화물칸에는 300t의 항공 연료가 금속 드럼통에 담겨 있었고, 흥남항은 북한에서 가장 많은 기뢰가 매설된 곳 중 한곳이었다.

라루 선장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전 선장./미 해군 홈페이지 캡처
라루 수사
머리너스 레너드 라루 미국 베네딕트회 수사./미 프란치스코 미디어 캡처
◇ 28시간 기적의 항해...부산 입항 거부당하고, 성탄절 날 거제도 도착
"자유 여정 시작 피난민, 90도 인사, 얼굴에 기쁨 없어"

빅토리호는 약 450해리(833km)의 항해 끝에 1950년 12월 24일 부산에 도착했지만 당국은 먼저 도착한 퇴각 군인과 피난민들로 도시가 넘쳐난다며 입항을 허락하지 않다가 7시간 후에야 50해리(92km) 떨어진 거제도 입항을 허용했다. 빅토리호는 성탄절인 25일 경남 거제도에 도착했고, 피난민은 탱크 상륙정을 이용해 한번에 16명씩 육지를 밟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90도 절을 하면서 감사를 표시했다. 당시 항해사였던 제임스 로버트 러니 전 미국 해군 제독은 "자유를 향한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에는 넘쳐나는 기쁨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항해 중 5명의 아이가 탄생했고, 미군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어 단어를 차용해 '김치 아이'라고 명명
했다. '김치 아기' 중 한명인 이경필 씨는 양친과 함께 거제에 남아 친선 대사가 되고, 거제의 3500마리 소를 돌보는 수의사가 됐다고 WP는 전했다.

◇ 라루 선장, 퇴역 후 베네딕트회 수사로 변신...사후 시성 절차 시작

라루 선장은 1952년 퇴역했고, 그 2년 후 미국 뉴저지주 뉴턴의 성(聖)바오르 베네딕트회 수도원에 입회해 마리너스 수사로 불리면서 2001년 10월 선종 때까지 성물(聖物) 가게 직원·접시닦이·종지기로 일했다.

2019년 그에 대한 시성 절차가 진행된 후 2021년 6월 17일 미국 가톨릭주교회의의 99%가 그와 조지프 버비스 러플로 신부에 대한 지역교구의 성인 추대 절차를 승인했다. 당시 승인에 따라 '하느님의 종' 지위에 오른 라루 선장을 시성을
위한 다음 절차인 복자로 추대하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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