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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고 더구나 고통이 따른다. 많은 기업의 과감한 구조 조정과 대량 해고 등이 따를 수밖에 없는 개혁을 단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치권이 기업과 국민들에게 고통이 따르는 개혁을 수행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심지어는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본의 우익 집권세력은, 일본의 불황 탈출에는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만 어렵고 고통스럽고 그래서 인기 없는 개혁의 길을 외면했다. 대신 불황 탈출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무언가 하는 듯 보이고 그래서 인기도 잃지 않는 미봉책(彌縫策)을 택했다.
그것은 돈을 마구 찍어 뿌리는 것이다. 그러면 돈이 돌아 경기가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퇴출시키기는커녕 돈으로 연명하게 하고, 그런 회사들의 주가도 돈으로 받쳐주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의 많은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가면서도 퇴출되지 않은 채 점점 좀비 기업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뒷받침되고 있는 오늘날 일본 경제의 현실이다. 그 결과 일본은 매년 50조엔 씩 재정 적자가 쌓이고 국가 부채가 GDP의 무려 276.80%[usdebtclock.org, 2021.11.10.]로 세계 최악의 국가 부채를 초래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미봉책이 효과마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마치 선진국은 세금이나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화폐를 발행해도 된다는 ‘현대 화폐 이론(MMT)’이 허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장기 불황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도려내야 할 환부를 놔둔 채 진통제만 놔주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채와 그 이자까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이자를 갚기 위해서라도 돈을 더 많이 찍어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것은 무책임한 폭탄 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투자가 짐 로저스는 일본의 이런 행태에 대해 몹시 비판적이다. 그는 일본은 매일 막대한 빚을 늘려가고 있고, 이렇게 찍어낸 빚을 가지고 국채를 매입하는 매우 끔직한 짓을 하고 있다면서, “이런 미친 짓을 얼마까지 할 수 있겠느냐!”며 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에는 B학점도 줄 수 없다고 혹평한다. 스가 총리에 이어 기시다 총리마저 이런 아베 정책을 이어가자 재무성 차관 야노 코지는 “현재 일본의 상황은...타이타닉호가 빙산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일본 정치권은 약이 되는 이런 쓴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무능, 무책임, 정책 실패를 숨기기 위해 혐한 발언과 한국 때리기를 한다. 자충수가 돼버린 아베의 무역 보복, 한국의 G7 가입에 대한 노골적 반대, 한국을 돕지도 가르치지도 관여하지도 않는다는 ‘비한 3원칙’, 걸핏하면 나오는 각료의 “감히 한국 따위”의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위안부나 강제노동 판결에 대한 해법을 한국이 제시해야 한다는 적반하장, 일본 외상과 수상의 새로 부임한 주일 한국대사의 접견 거부, G7회의에서 한·일 정상 회담 기피, 우심해진 독도 영유권 주장, 주한 일본 외교관의 막말, 남북 종전 선언 방해 등등 무수하다.
일본은 우익 정치권의 무능으로 경제도 국가도 추락하고 있다. 그럴수록 개혁이 시급하나 한국 때리기로 대신한다. 그들은 일본의 추락을 재촉할 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도 망치고 있다. 일본의 우익 정치권의 행태를 통해 국가 발전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