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건너려 멈춰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 손엔 서류가방을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손목시계와 신호등을 연신 번갈아 쳐다보는 중년의 남자.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계속 고쳐 만지는 늘씬한 여자. 그런 여자를 곁눈질하다가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젊은 청년. 이윽고 푸른 신호가 빛나고 사람들은 제각기 발소리와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길을 건넌다.”
화가 이영은의 작가노트 중 한 구절이다. 그의 작품에는 날이 채 밝지 않은 출근길 혹은 어두워지기 전 퇴근길에 횡단보도에서 옷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사람 대신 옷이 한 벌 한 벌 사람인 양 화면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옷이 소통의 매개체라고 봤다. 또한 그는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실체 없는 옷과 같은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