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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100세 시대] 대학교 졸업식에서 학부모가 두 번 우는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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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필 기자

승인 : 2013. 02. 19. 11:26

* 등록금 내기 위한 학자금 대출로 빚더미 졸업…자녀들도 눈물샤워
머리가 희끗한 한 아버지가 딸의 졸업식에 와 부인과 자녀들의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이정필 기자 = 졸업과 새 출발의 달 2월. 학부모는 애지중지 키운 자녀가 성장해 사회로 진출하는 대견함으로, 학생들은 정든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과 새로운 희망으로 눈물을 훔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가 졸업식장에서 보이는 눈물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중장년층 부모의 조기퇴직과 대학생 자녀의 등록금 납부 시기가 맞물리면서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이 수천만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학자금 대출 인원은 72만 7천여 명으로, 액수는 무려 2조3265억여 원에 달한다.

30만 3천여 명에 7842억여 원이던 2003년과 비교하면 인원은 2배가 훨씬 넘고, 액수는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자녀가 졸업해도 앞으로가 더 막막한 중년들과 빚더미를 떠안고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청년들이 졸업식 날 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자료= 통계청, 출처=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장학재단)

지난주 수도권 소재 대학 두 곳의 학위수여식장을 찾았다.

흰 눈이 쌓인 교정에서 졸업가운을 걸친 채 학사모를 쓰고 가족이나 친구와 사진을 찍는 졸업생들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환하게 웃었지만 속내를 들어보니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하이힐을 신고 눈길을 조심스레 걷던 유지아씨(23·여·서울 성내동)는 “대학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아버지가 명예퇴직을 당하셔서 2년간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며 “20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인데 아직 취직을 못해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내고 있는 형편이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졸업을 해서도 퇴직한 부모님에게 토익학원 수강비와 용돈을 받아야 한다니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유씨는 “앞서 졸업한 예비역 오빠들 얘기를 들어보면 입사를 해서도 1년 치 연봉은 고스란히 학자금 대출을 갚는데 쓴다고 하더라. 부모님 용돈은 고사하고 생활비를 제하면 2~3년은 빚을 갚는데 월급을 다 쓴다”며 “결혼한 선배는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니 그 다음은 전세 대출에 아이 양육비로 평생 빚쟁이 신세가 됐다고 한탄한다. 나라 경제는 발전했다고 난리인데 주위 사정은 왜 이렇게 점점 더 팍팍해지는지 모르겠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흰 눈이 덮힌 교정에 모인 졸업생과 가족들.
졸업생과 그 아버지의 사진을 다른 졸업생 친구가 찍어주고 있다.

대학 졸업생들의 부모 세대는 걱정이 더 컸다.

막내아들의 졸업식에 부부가 함께 와 사진을 찍어주던 아버지 박구현씨(64·경기 용인 죽전동)의 얘기를 들어봤다.

박씨는 “자금 형편이 여유롭지 못해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충당하려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며 “큰아들이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니 등록금이 불과 3년 만에 100만원 가까이 올랐다. 그래서 작은아들은 입대할 때 미리 등록금을 납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은 일을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정년퇴직할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며 “얼마 안 되는 저축과 퇴직금으로 우리 부부가 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애들이 결혼할 때 작은 전셋집이라도 마련해 줘야 할 텐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요즘은 자식 둔 게 죄인이라는 말을 절감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자녀의 졸업식에 참석한 한 노부부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이든 아버지와 젊은 자녀가 동시에 빚더미에 허덕이는 현상에 대해 나름의 주장을 펴는 학생도 있었다.

졸업생 강인재씨(29·서울 천호동)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교육비 증가에 있다. 여기서부터 파생된 측면이 크다”며 “1%의 특권층을 빼면 교육비 증가에서 자유로운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는 없지 않나. 학생들이 빚에 시달리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현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연봉과 직결되는 등록금 문제에 입을 다무는 교수들도 존경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등록금 폭등의 중심에는 기업형 대학들이 있다. 두산의 중앙대, 삼성의 성균관대, 조선일보의 연세대, 동아일보의 고려대 등이 그 예”라며 “대기업이 대학을 소유하기 전에는 그나마 등록금이 싸서 취업 후 금방 자립이 가능했지만, 기업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 후에는 등록금이 징그럽게 올랐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연히 학자금 대출 러쉬가 이어졌고 은행의 고금리 이자놀이까지 더해져 취업 후 돈을 벌어도 애를 낳기 전까진 대출을 갚느라 돈을 못 모으고 애가 생기면 그 뒤부터는 평생 대출과 상환의 쳇바퀴”라며 “내가 그동안 낸 걸 계산하니 이자가 원금의 40%다. 1000만 원을 빌려 1400만 원을 갚는 구조인데 천천히 갚는 사채나 마찬가지다. 힘이 없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대학 등록금을 자율화한 것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졸업생들이 대학 강당 자리에서 일어나 교가를 부르고 있다.

멀리서 가족사진을 찍어주던 중년의 사진기사는 요즘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졸업식 날 돈을 내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고 푸념했다.

옆에서 꽃다발을 파는 아주머니가 누군가의 어머니이듯 그도 한 가정의 가장이리라.

그러면서도 디지털카메라로 부인과 딸아이의 사진을 찍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카메라를 뺏어 무료로 찍어주는 인정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화창했던 졸업식 날씨가 어느새 흐려지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이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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