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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칼럼] 문경지교와 부형청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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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12. 01. 09. 13:46

진나라 임금이 조나라 임금을 초청했다. '정상회담'을 하자는 제의였다.
조나라 임금은 측근인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를 불러서 상의했다. 무신인 염파는 남아서 나라를 지키고 문신인 인상여가 임금을 수행하기로 했다.

두 임금은 회담을 앞두고 술자리를 벌였다. 난데없이 진나라 임금이 조나라 임금의 비파 연주 솜씨를 보고싶다고 부탁했다. 당돌한 요청이었지만 조나라 임금은 비파를 뜯어줬다.

그러자 배석했던 인상여가 말했다.
"우리 임금이 악기를 연주했으니, 진나라 임금도 해야 마땅하다.'

인상여는 그러면서 은근히 겁을 줬다.
"나는 지금 칼로 나의 목을 찔러 피가 흐르게 할 수도 있다."

자기 목을 찌른다고 했지만 여차하면 진나라 임금을 벨 수도 있다는 위협이었다. 진나라 임금도 결국 소부라는 악기를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회담이 시작되자, 진나라 신하가 말했다.
"우리 진나라 임금의 만수무강을 위해 조나라의 성(城) 15개를 넘겨줄 수 없는가."
인상여가 받아쳤다.

"우리 조나라 임금의 만수무강을 비는 뜻에서 진나라 수도 함양성을 넘겨줄 수 없는가."
이랬으니 회담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조나라는 진나라의 콧대를 누를 수 있었다. 조나라 임금은 인상여에게 상경(上卿)이라는 최고 벼슬을 내렸다.

인상여가 벼락출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염파가 발끈했다. 염파도 같은 상경이지만 인상여의 '호봉'이 더 높았다. 염파는 인상여를 비난했다.

"나는 전쟁터를 무수하게 누빈 공으로 떳떳하게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인상여는 보잘것없는 '세 치 혀'를 놀려서 나보다 높은 자리를 받았다. 이 모욕을 참을 수 없다. 그대로 두지 않겠다."

인상여는 그런 말을 전해듣고도 염파를 피했다. 병을 핑계로 결근했다. 길거리에서 마주칠 듯싶으면 수레를 돌리도록 했다.

인상여의 이런 행동은 손가락질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인상여의 뜻은 달랐다.
"진나라가 우리를 침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염파와 다투면 진나라에게 이익이 될 뿐이다. 염파와의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 문제다."

염파는 부끄러웠다. 웃통을 벗은 채 가시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한 짐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갔다.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염파와 인상여는 화해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친구가 되기로 맹세했다. 잘 알려진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다.

그런데, 이 '문경지교' 속에 또 하나의 고사성어가 숨어 있다. 염파가 가시나무 회초리를 지고 인상여에게 매맞겠다며 사과한 '부형청죄(負荊請罪)'다.

염파는 '국가이익'을 위해서 '부형청죄'를 했다. 덕분에 후세에 '문경지교'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부형청죄'처럼 아름다운 사과를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정치판은 '돈 봉투' 의혹과 관련, '지켜본 뒤 사과 검토'였다.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두루뭉실한 사과였다. 청와대는 '747 공약'을 "중장기적 목표로 제시한 것"이라고 오리발 닮은 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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