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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의 선택지는 이런 것 같다. '강남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면서 학습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매달 많게는 수백만원을 들여 최고급 강사진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의대로 진학한다.' 대부분 부모는 대략 이런 자녀를 꿈꿀 것이다. 의대를 가야 성공했다고 믿는 사회다.
그러나 우리 밖 세상은 완전히 딴판이다. 우리가 의료에 매몰돼 있을 때 경쟁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중국은 초등 고학년 수천만명 중 10만명을 골라내 영재학교에서 수학·과학을 대학 수준까지 가르친다고 한다. 여기서 걸러진 1000여명은 명문대 부설 특수 학급에서 권위자로부터 기초 학문을 마음껏 배운다. 의대로 안 간다. 졸업생은 세계 유수의 IT 기업으로 진출한다. 중국 과학 기술 인재들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진행된 첫 로봇 마라톤 대회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국제 로봇은 중국 과학 기술 인재의 연구 및 개발의 산물이다. 중국의 IT 기술이 과연 어디까지 날아갈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석권한 중국 전기차 기업 BYD(비야디)는 미국 테슬라를 추월한 지 오래다. BYD 매출은 지난해 1000억 달러를 넘었다. 판매량은 테슬라의 2배다. 지리·상하이자동차 등 중국 전기차 기업들도 맹추격 중이다.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세계 전기차 시장은 당분간 테슬라가 선두에 서겠지만. 나머지 2위 이하는 모두 중국산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의 현대차·기아는 어디에 서야 하나.
중국의 로봇 기술과 전기차·배터리 등 생산 능력 등은 인해전술을 바탕으로 하루아침에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오르게 된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인재들이 기술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덕분이다. 80시간 이상 연구실에서 매달리면서 일하는 중국 젊은이들을 워라밸(Work-and-Balance)을 갈망하는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중국 첨단 산업 발전 속도를 언급하며 "중국의 속도를 보면, 우리가 쫓아가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우려했다.
나라 밖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 사회는 지금 의료에 매몰돼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의대 정원 확충 정책은 물거품이 됐다. 더 많은 의료진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으로 믿었던 국민 대다수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 사안은 동력을 잃었다. 급기야 정부는 두 손 들었다.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체를 만든다고 선언했다. 의료인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정부를 아예 발 아래 두려고 하는 태세다. 공대도 데모를 하면 정원 조정 등을 놓고 정부와 협의체를 만들 수 있다는 달갑지 않은 전례를 남겼다.
의료 논란의 승자는 표면적으로 의료인이 됐다. 그랬다고 해서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제고됐을까, 국민 모두가 의료인 승리에 환호하고 있을까. 절대 아니다. 의학은 여러 학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의료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의대생과 의료인은 기술자·개발자·마케터·경영자 가운데 하나다. 모든 직업은 동등하다. 이걸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의 먹거리를 위해 기술개발에 전력하는 쪽으로 국가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해 인재들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기초학문과 기술개발 분야에 인재가 몰릴 수 있게 정부와 기업이 과감한 투자에 나서 여건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돈 때문에 의술을 택한다는 오해를 사회 시스템으로 풀어줘야 할 때다.
의대·의료인들에 매몰돼 있는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