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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해양세력인 미국보다 대륙세력인 중국과 소련에 더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소련이 한국에 대한 지배권 쟁취 유혹을 미국보다 더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과 소련은 북한의 6·25 남침을 지원했고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38도 선에서 저지해 한국전쟁을 3년간의 소모전으로 만들었다. 볼은 이러한 딜레마 속에 한국의 미래는 한민족의 자결 의지 여하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소련 역시 일본을 잠정적 동맹국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데올로기는 달라도 국가 간에 현실적인 협정을 맺는 것이 보통이며 일본에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을 앞세워 소련에 대항해 왔고 미국과의 실리적 타협을 추구하지만 가능한 큰 대가를 원한다고 했다.
일본의 어부지리 전략 또는 실리주의를 평가한 내용이다. 조세프 나이(Joseph S. Nye)는 냉전 종식 후 1991년 발간한 '21세기 미국 파워(Bound to Lead)'에서 미국국민의 56%가 소련과 같은 군사적 적대자보다 일본과 같은 경제적 경쟁자가 미국에 더 큰 위협임을 믿게 되었다고 국가안보를 군사와 경제 양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전후 일본은 전방위 외교와 정경분리 그리고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면서 경제력을 키웠다. 그리고 1980년대 차기 세계경제 주도국에 근접했으나 미국의 견제로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좌절을 경험했다. 당시 일본의 시사평론가들은 미국의 윤리적 붕괴를 지적하면서 내부 분열 가능성을 예상하는 서적을 출간했고 '침묵의 함대'라는 베스트셀러는 일본의 자존심 회복과 재부상을 바라는 국가 비전을 내보였다. 현재 일본은 2024년 기준 33년 연속 세계순자산국가 1위를 기록하고 471조3061억엔(약 4085조원)에 달하는 대외순자산을 기반으로 엔화 영역을 확대하면서 군사력도 강화 중이다.
볼은 만일 미국이 서유럽의 안보에만 전념하게 된다면 일본은 미국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의 선택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받을 경제와 군사적 이해득실을 비교함으로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세계대전이 발발해 미국이 승리한다면 일본은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으로 소련의 극동영토를 일본의 신탁통치지역으로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일본이 소련에 가담해 소련이 승리하면 미국의 태평양 영토에 대한 권리를 얻게 될 것으로 오히려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태평양의 섬과 반도 획득을 더 선호할지 모른다고 했다.
한국전쟁에서 호주는 1950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결의안 83호 발표 후 영국과 뉴질랜드에 앞서 6월 29일 전투병 한국파병을 결정해 9월 17일 선발대가 부산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안보위협이 배경이 되었다. 1942년 5월 일본군은 항모선단을 산호해로 출진시켜 파푸아 뉴기니 점령을 시도했으나 패배했다. 그리고 7월 재차 공격으로 연대병력의 상륙에 성공해 포트 모레스비 50㎞까지 접근했다. 호주에 주둔한 맥아더 장군의 방어작전이 성공해 아시아에서 Pax Britannica를 축출하고 Pax Japonica를 건설한다는 대일본제국의 꿈은 실패로 끝났으나 다윈(Darwin)시(市)까지 일본전폭기의 폭격을 당한 호주의 불안감은 컸다.
볼은 미국은 장래 일본의 재무장을 오히려 희망할지 모르며 재무장한 일본이 연대국가를 확보해 국제무대에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서구국가들이 일본의 중립화를 논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으며 일본의 군사적 재기를 두려워하는 서구와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된 우려를 기반으로 지역 안보를 위한 협정을 제안했다.
1840년 아편전쟁 발발로부터 1941년 태평양전쟁까지 근 백년간 아시아는 격동의 시대를 보냈다. 세계열강이 아시아를 무대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중국을 상대로 일본과 협력했던 러시아·프랑스·독일은 다시 일본을 압박해 요동반도를 중국에 반환하도록 간섭했다.
일본과 영국 간의 동맹은 일본군의 동남아 공격으로 파탄되었고 미국과는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전시 연합국이던 미국과 소련은 적대국가가 되었고 1991년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부상으로 국제질서는 거대한 재편기에 들어갔다.
국제사회의 불안정성이 폭발하던 시기에 맥마흔 볼이 희망한 것은 세계평화를 위한 아시아의 비전 또는 역내의 공동안보를 위한 레짐 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세계전략을 2020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 간의 정치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전략적 유연성은 당연하다. 군사력과 경제력의 불균형 속에서 미국외교에 신고립주의가 등장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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