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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제로’의 혼란, 1%의 경계에 선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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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기자

승인 : 2025. 04. 16. 16:20

이서연
이서연 비즈·라이프부 기자
요즘 식품·주류 업계의 핵심 마케팅 소재는 '제로'다. 설탕 제로, 칼로리 제로, 알코올 제로…. '제로'는 곧 건강에 좋은 제품이라는 소비자의 믿음이 이 마케팅의 소구 포인트다. 그러나 이 신뢰의 이면에는 '제로'와 '0%'의 해소되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알코올 1% 미만의 '비알코올' 음료가 대표적이다. 주류 업계가 앞다퉈 비슷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알코올 함량 0.7%'를 내건 맥주도 나왔다. 알코올 도수는 낮지만 맥주와 유사한 맛을 지닌 이 제품은, 주류로 분류되지 않아 세금 부담이 적고 유통 채널도 자유롭다.

그런데 이 '1%의 차이'는 그 자체로 논쟁적이다. 알코올 도수 1% 미만인 맥주는 술일까, 음료일까? 그걸 부르는 명칭은 '무알코올'이 맞을까, '비알코올'이 맞을까. 현재 국내 법상으로는 0.5% 이하는 '무알코올', 0.5초과 1% 미만은 '비알코올'이다.

제품을 예로 들면 하이트진로의 '하이트제로 0.00'은 알코올 함량이 제로인 '무알코올' 제품인 반면, '클라우드 클리어제로'는 상품명에 '제로'라는 단어가 있지만 실제 0.5%가량의 알코올이 잔류하고 있어 '비알코올'이다.

해외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0.5% 이하를 '무알코올'로 분류하지만, 0.0%와의 명확한 차별은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이를 구분해 'non-alcoholic'과 'alcohol-free'로 나눠 표기하지만, 한국에서는 제품 포장만으로 그 기준을 명확히 알기 어렵다. 두루뭉술하게 '제로 맥주'라는 마케팅이 성행하는 이유다.

무알코올을 표방하는 '제로' 맥주는 건강과 가벼운 음주를 추구하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신제품임이 분명하다. 실제 0.5% 내외의 알코올은 술이 아닌 김치, 요구르트 등 발효 식품이나 주스에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여기서 초래하는 소비자 혼란이다. 제로 맥주는 노래방, 편의점, 심지어 학교 근처에서도 별다른 제약 없이 판매될 수 있다. 무알코올 맥주는 탄산음료로 분류되기 때문에 미성년자에게 구매 제한도 없다. '성인용'이라는 표시만 있으면 된다. 제로맥주의 등장이 음주에 대한 청소년의 진입 장벽을 낮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에게 오해의 소지도 제공한다. 특히 임산부나 종교적 이유로 음주를 피하는 소비자에게 이같은 정보 부재는 단순한 혼란을 넘어 건강과 신념의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규제는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어떤 규제는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보장하는 안전장치가 되기도 한다. 경쟁적인 '제로 마케팅'에 앞서 고민해봐야 할 숙제다.
이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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