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akaoTalk_20250408_175821701 | 0 | 서울문화재단이 새롭게 조성한 서울연극창작센터가 성북구 성북동에 문을 열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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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서울의 문화지형도에서 연극은 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학로가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대학로는 수십 년간 한국 연극의 심장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제 그 심장이 뛰는 울림이 성북동까지 한 발 더 확장됐다. 지난 3월 20일 서울문화재단이 새롭게 조성한 서울연극창작센터가 성북동에 문을 열며 연극 창작 생태계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서울연극창작센터는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장소가 아니다. 연극이 '태어나는 곳'이다. 아이디어가 씨앗처럼 뿌려지고 실험과 고민을 거쳐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극의 전 과정이 한 공간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전례 없는 시도가 이곳을 통해 지행된다. '창작'이라는 단어에 무게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붉은 벽돌 건물로 들어섰다. 외관만으로는 연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마치 누군가의 상상 속 풍경이 현실로 구현된 것처럼 공간이 구성됐다. 각각의 층은 연극 제작의 흐름을 따라 배치됐다. 곳곳에는 연극의 흔적과 가능성을 상징하는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 KakaoTalk_20250408_174904070 | 0 | 고정석 없이 자유로운 구성과 무대 실험이 가능한 블랙박스 극장 '서울씨어터 제로'. 객석은 수납식으로 설계돼 유연한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 사진=전형찬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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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1층의 '서울씨어터 제로'다. 고정된 객석이 없는 이 블랙박스 극장은 이름처럼 '제로' 상태에서 시작해 무한히 변주되는 연극적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형식이 없기 때문에 형식을 넘나들 수 있다"는 말처럼 이곳에서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연극이 탄생할 준비를 하고 있다.
건물 밖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 '연극인라운지'가 등장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휴게 공간이 아니다. 연극 자료를 열람하고,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만나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이자, 시민 누구나 연극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이다. 라운지 한켠에는 공연에 사용되었던 의상과 소품을 직접 착용해보는 체험존이 마련돼 있다. 체험존은 연극의 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 KakaoTalk_20250408_174512089 | 0 | 연극 자료를 열람하고,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만나 교류하는 라운지는 2층에 자리잡고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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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는 '연극인오피스'가 자리한다. 장기 및 단기 입주가 가능한 공공임대사무실로, 총 12개 공간이 예술단체에 저렴하게 제공된다. 회의실, OA존까지 갖춘 이곳은 연극 창작자들의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보장하는 실질적 지원 시설이다. 창작자들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이곳은 서울연극창작센터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4층과 5층은 공연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 공간으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공간이다. 특히 5층에 위치한 '서울씨어터 202'는 202석 규모의 프로시니엄 극장으로, 고전적인 무대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블랙박스 극장이 실험과 변주를 상징한다면, 이곳은 연극의 본질과 깊이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무대다. 서로 다른 두 극장의 공존은 연극이라는 장르의 스펙트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6층 옥상에 오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잔디와 조형물로 꾸며진 옥상공원은 한양도성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명소이자, 시민을 위한 문화 향유 공간이다. 공연장이라기보다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열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마켓, 야외 낭독회, 커뮤니티 행사가 열릴 계획이다.
 | KakaoTalk_20250408_175646336 | 0 | 공연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 등을 대여하거나 위탁할 수 있는 공유플랫폼인 '리스테이지 서울'.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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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창작센터가 무엇보다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속가능한 공연 환경을 위한 실질적 시스템 때문이다. 6층에는 '리스테이지 서울'이라는 공연물품 공유 플랫폼이 운영된다. 무대에 한 번 쓰이고 버려지기 쉬운 의상, 소품, 대도구를 등록하고 대여할 수 있는 이 플랫폼은 창작 비용 절감은 물론, 공연예술계의 탄소중립 실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5000여 점에 달하는 물품들이 등록되어 있으며, 예술단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여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 KakaoTalk_20250408_175015838 | 0 | 2층 라운지 한켠에는 공연에 사용되었던 의상과 소품을 직접 착용해보는 체험존이 마련돼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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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창작센터는 서울문화재단이 대학로 중심부에 이미 운영 중인 서울연극센터, 대학로센터와 함께 공연예술 지원 클러스터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는 시설이다. 3개 기관은 앞으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창작 지원부터 유통, 해외 진출에 이르기까지 연극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지원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연극창작센터는 단순히 새 건물을 하나 더 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창작자가 더 나은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관객이 더 폭넓은 시선으로 연극을 만날 수 있도록, 연극이라는 예술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간이다. 대학로라는 오래된 울타리를 넘어, 성북동에서 다시 태어난 이 실험적인 공간은 한국 연극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