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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전후 영토문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정전조건이다.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는 인정하고 전후 국경선은 현재의 접촉선을 받아드리는 분위기이고,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은 다양한 구상이 나오고 있으나 관련국의 입장 차이가 확연하다. 정전조건도 누가 좀 더 이익을 챙기고 누가 좀 더 손해볼 것인가만을 남겨 놓은 것이다.
트럼프의 입장은 확고하다. 전쟁 당사국의 이익보다 조기 정전이다. 그래서 가장 약한 고리인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 대신 러시아는 체면을 구기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러시아를 압박할 수단도 마땅치 않고 효과도 크지 않다. 오히려 전쟁만 길어질 뿐이다. 우크라이나는 절박하다. 전선상황도 불리하고, 미국의 지원 없이는 현재의 전선유지는 물론 전쟁지속은 불가능하다. 빼앗긴 영토는 양보할 수 있어도 전후 믿을만한 안전보장이 있어야 정전이든 휴전이든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평화를 향유해온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을 현재 상태에서 저지하고 싶어한다. 러시아의 위협으로 우크라이나에 직접 파병하지 못하고 지원만 하고 있다. 미국은 NATO의 국방비 증가를 압박하고 있지만 NATO는 미국이 유럽의 안보에 더 많이 책임져주기를 바라고 국방비 증가에 미온적이다. 트럼프는 여기에 불만이다. 러시아의 위협에 유럽이 더 많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크림반도가 병합된 2014년 이후 미국의 지원은 다양한 형태의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었어도 미국의 700조원 이권을 보장한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참전한 전쟁 이후 이런류의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번 미·우 정상회담에서 광물협정에 사인하지 않았지만 젤렌스키는 사인할 의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광물협정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보상과 미국 기업의 우크라이나 진출로 러시아의 재침으로부터 우크라이나가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는 광물협정에 서명할 수 있지만 군사외교적으로 담보되는 안전보장을 요구했다. 물론 물밑에서의 약속이나 향후 관련국이 내밀 카드가 무엇인지 다 드러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안전보장과 관련된 문제를 속단하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유럽과 우크라이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유럽에 더 많이 떠넘기고 중국에 집중하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전쟁에서 바로 손을 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러시아에게 더 많이 양보할 의사가 없고, 우크라이나에게는 더 많이 양보하라고 강요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와 상대의 카드를 읽었기에 젤렌스키는 의도적으로 정상회담을 파탄시키고 광물협정에도 사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배수진을 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가진 유일한 카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더 큰 피해와 위험을 요구하면서 버티기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방한에서 대표단장이 한국전쟁 휴전회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석방 사례를 언급한 것이 매우 상징적이다.
미국도 딜레이다. 당장 손을 빼면 우크라이나가 더 큰 위험에 처할 것이고 향후 러시아에 더 많은 양보와 함께 정전협상에는 더 불리한 입장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크라이나가 반미로 전환될 수도 있고, 유럽에서 미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 있다. 앞으로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당분간 정전시기와 조건에 대한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이나 이것은 전적으로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와 결단에 달렸다. 다만, 파국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지금의 입장에서 조금씩 간격을 좁힐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미국은 유럽보다 태평양에 더 집중할 것이고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의 안보에 대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큰 책임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와 미국과의 개별적인 이슈와 대북 문제는 별개이다. 특히 우리 방위산업에는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대표단 방한에서도 전후 재건과 방산협력에도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정경운 한국전략문제연구소(KRIS)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