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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은 고르디옙스키가 지난 4일 잉글랜드 서리주 고달밍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수사는 현재 대테러부서가 주도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위협이 될 만한 징후는 없다고 설명했다.
고르디옙스키는 1985년 영국으로 망명한 뒤 줄곧 영국의 보호를 받아왔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냉전 시기 가장 영향력 있는 스파이 중 한 명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그는 미·소 간 핵전쟁 위기 고조를 막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38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대 초 KGB에 들어가 모스크바, 코펜하겐, 런던 등지에서 활동했다. 이후 런던 주재 KGB 지국장에 올랐다. 고르디옙스키는 1968년 프라하의 봄 민주화 운동이 소련 탱크에 의해 진압된 사건에 환멸을 느끼고 1970년대 초 MI6에 협력하게 된다.
고르디옙스키는 훗날 영국 정보사학자 크리스토퍼 앤드루와 공저한 'KGB: 내부의 이야기'에서 "공산당 일당 독재는 결국 편협함, 비인간성, 자유의 파괴로 이어진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서방에 협력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1978년 덴마크 파견을 마치고 소련에 복귀한 그는 1982년 영국으로 파견되면서 스파이 활동을 재개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대소련 강경책으로 양국 간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였다.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이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판단 아래 수백 기의 미사일과 장거리 핵 폭격기 등을 배치했다.
고르디옙스키는 소련 지도부의 이런 동향을 MI6에 보고했고, 이를 심각하게 여긴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레이건 대통령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그 결과,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과의 긴장 완화에 나서며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는 해소될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 '스파이와 배신자'를 쓴 벤 매킨타이어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고르디옙스키는 비밀스럽게 냉전 종식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고르디옙스키는 러시아에서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영국에서는 200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영국 안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단 훈장인 성 미카엘 및 성 조지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