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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란 삼각형이나 사각형의 기초 위에 벽돌이나 암석을 쌓아 올려 모든 면이 중앙의 꼭지에서 만나는 사면체나 오면체의 구조물을 이른다. 지구인의 세계사에 도취한 외계인 미도는 피라미드 구조물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미도가 피라미드에 빠져드는 이유는 오늘날 많은 고고학자들이 피라미드의 비밀을 풀기 위해 모래바람을 헤치면서 땅을 파고 있는 이유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구인들이 신기한 현상을 접하면 못 견디게 궁금해하듯 외계인 역시 캐묻고 따지는 본능이 있는 듯했다. 어느 행성에서 나고 자랐든 이성을 가진 고등 생명체라면 누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먼 옛날 지구인들은 왜 그토록 많은 인력과 재원을 피라미드 제작에 쏟아부어야만 했을까?
피라미드가 고대 이집트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이집트 외의 여러 문명도 나름의 피라미드형 구조물을 구축했다. 오늘날 수단, 이탈리아, 인도, 멕시코, 페루, 캄보디아, 인디아 등지를 가보면 지금도 먼 옛날 세워진 여러 형태의 피라미드들이 서 있다. 지리적으로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문명 간에 상호 영향이 없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큰 바다에 막힌 메소아메리카의 피라미드가 이집트 피라미드의 모방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대서양 건너는 고대의 항로가 없었다면, 마야, 톨텍, 아즈텍문명 등의 피라미드는 독자적으로 형성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피라미드의 보편성은 쉽게 설명된다. 물리학적으로 피라미드는 가장 안정된 구조물이다. 중력 작용에 맞서 높은 구조물을 지으려면 위로 갈수록 표면적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견고한 돌기둥을 세운다 해도 수직으로 암석을 쌓아 올리면 하중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피라미드형 구조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산이 세모꼴인 원리와도 통한다. 지구 어디서나 중력이 작용하므로 여러 문명권에서 독자적으로 피라미드 구조물을 구축했을 수 있다.
다만 중력 작용이란 객관적 조건일 뿐이다. 중력 그 자체가 피라미드 제작의 직접적 동기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지구 위에 살아가는 150만여 종 동물 중에서 높은 건물을 지으려는 욕구에 시달리는 동물은 호모사피엔스밖에 없다. 피라미드 제작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그들의 근원적인 심적 동기를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왜 고대의 지구인들은 피라미드를 만들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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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제작의 직접적인 이유는 천상에 닿을 듯 높은 구조물을 짓고 싶어 했던 지구인의 간절한 열망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호모사피엔스는 대체 왜 하늘을 바라는 희한한 열망을 갖게 되었을까? 다른 동물과는 달리 그들은 척추를 목뼈까지 꼿꼿이 펴고 정수리를 수직 방
향으로 든 채 두 발로 걷으며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하늘을 향한 관심이 생존을 위한 실용적 목적과 무관할 리는 없다. 하늘을 꾸준히 올려다보아야만 계절의 순환과 일기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특히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려면 날마다 해의 길이를 재고 달의 모양을 살피고 강수량을 기록해야만 했다. 천문(天文)을 살피지 않고선 계절의 변화에 맞춰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곡식을 거두는 농경 생활 자체를 영위할 수가 없게 된다.
지구인들은 수십만 년 익숙하게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천문기상의 규칙성을 간파할 수 있었기에 1만년 전 비로소 사냥꾼에서 농사꾼으로 전업할 수 있었다. 태고로부터 지구인들이 하늘에 큰 관심을 보인 까닭은 일기(日氣)를 살피고 눈비를 피하려는 실생활의 필요도 있었겠지만, 그보단 매일 밤하늘에 펼쳐지는 장엄하고 수려한 별들의 우주쇼를 보면서 존재론적 신비감에 휩싸였기 때문은 아닐까. 태고의 원시인들은 밤하늘 은하수의 훤한 불빛을 한평생 익숙하게 살펴보는 삶을 살았다. 농경을 시작한 후부턴 더더욱 천기(天氣)를 감지하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1만년 전 농경에 돌입한 지구인들이 반만년 전부터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농사꾼들은 사냥꾼보다 천상의 변화를 더 체계적으로 연구해야만 한다. 하늘에 관심이 없다면 무엇 하려 애써 그토록 높은 구조물을 짓겠는가? 하늘을 향한 농경민의 열망을 무시한다면 절대로 피라미드의 신비를 풀 수가 없다. 피라미드 자체가 하늘 가까이 가려는 지구인의 욕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여러 문명권 곳곳에 세워진 피라미드 구조물이 바로 그러한 지구인의 경이감과 종교심과 무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피라미드야말로 하늘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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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기원과 발전 과정에 관한 이집트학 여러 학술서를 정독한 미도가 물었다.
"대체 왜 고대인들은 왜 그토록 많은 인력과 재원을 동원하여 피라미드를 만들어야만 했을까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대체 어떤 비밀을 품고서 5000년 세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을까요? 이집트학 전문가들이 흔히 주장해 왔듯, 피라미드는 영생을 희구했던 파라오의 거대한 무덤에 불과했을까요?"
미도의 말마따나 대체 왜 거의 반만년 전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대의 건축 기술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피라미드 제작에 그토록 큰 인력과 재원을 쏟아부었을까? 19세기 이래 고고학자들은 이집트 피라미드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 격렬한 논쟁을 벌여왔다. 그 결과 여러 분야에서 많은 이론이 분분히 제기되었지만, 단 한마디로 뭐라 피라미드 제작의 이유를 다 설명할 순 없을 듯하다. 모든 역사적 행위엔 복합적 원인이 다층적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이었다는 학계의 정설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학자들도 상당수 있다. '왕들의 계곡'에 놓인 후대 무덤에서 많은 미라가 출토됐지만, 기자 대피라미드를 비롯하여 중요한 피라미드에선 지금껏 파라오나 왕족의 미라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들의 주요한 논거다. 그들은 이집트 무덤에는 보통 귀금속 매장품, 벽화, 상형문자 기록물이 발견되지만, 피라미드 내부에선 그러한 장신구나 기록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집트학 권위자 다수는 19세기 이래로 피라미드가 무덤이라는 학설을 견지하고 있는데, 피라미드 내부에서 발견된 기록물에 장례 관련 언급이 나올뿐더러 석관도 발견됐다는 근거를 든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반을 파서 만든 사각형 구조물 위에 석조 지붕을 덮은 마스타바(mastaba, 분묘)에서 피라미드로 이어지는 건축학적 연속성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학계의 정설대로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이었다 해도 큰 의문이 남는다. 진정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이었다면, 파라오는 왜 그토록 자신의 무덤을 웅장하고, 균형 잡히고, 슬프도록 아름답게 만들려 했을까? 단지 영생을 얻으려는 욕망 때문이었을까? 웅장한 무덤을 건설함으로써 과연 파라오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대규모 인력을 부리고 막대한 재원을 써서 그토록 장엄하고, 숭고하고, 눈부시게 경이롭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완벽한 피라미드를 지상에 구현함으로써 파라오들은 대체 무엇을 이뤘을까? 피라미드 제작의 사회적 파장, 경제적 효과, 종교적 효능, 문화적 영향은 과연 어떠했을까?
송재윤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