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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정부공보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1일(현지시간)부터 트어티엔후에성(후에)이 후에 중앙직할시로 승격된다고 밝혔다. 중부 지방에 위치한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황궁이 있던 '마지막 수도'로 유명하다.
후에의 이번 중앙직할시 승격은 지난해 15대 국회의 제8차 회의에서 461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458명의 찬성으로 이뤄졌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달 29일 해당 결의안 발표식을 거행하며 중앙직할시 승격을 축하했다.
쩐 타인 먼 국회의장은 "후에가 1일부터 베트남의 6번째 중앙직할시가 되는 것은 후에 주민들의 자부심이자 오랜 염원일뿐만 아니라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지역을 위한 유망한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 밝혔다. 아울러 지역 당국자와 주민들에게 "후에시가 2030년까지 문화·여행·전문의료에 있어 동남아의 큰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과 결심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후에는 지난 1996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중앙직할시로 승격을 도모한 바 있지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96년에는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산간 지역으로 이동이 어려운 지역이 많고 여전히 (현대적 이동수단보다) 나룻배가 가득한 지역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계속해서 중앙직할시 승격을 도모하던 후에 지역에 1999년 11월 발생한 대홍수는 큰 타격을 입혔다. 베트남에서도 여전히 최악의 홍수로 회자되는 당시 대홍수로 35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실종됐다. 이 홍수로 90만 명이 기근에 시달렸고 인프라가 심각하게 파괴되며 1조7600억동(1017억 2800만원)이란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후에 지역 당국자들은 "가장 끔찍한 홍수로 지역 발전 속도도 둔화돼 중앙직할시로 승격하겠단 목표가 더 어려워졌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대홍수 10년 후인 2009년 공산당 정치국이 후에를 몇 년 이내로 중앙직할시로 승격할 것을 제안하며 후에에는 대규모 교량 건설과 도로·공항 확장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2014년 트어티언후에성의 핵심지역의 인구밀도가 중앙직할시 승격을 위한 기준치의 1/40에 불과하고, 1인당 평균소득도 전국 평균치보다 낮은데다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점에서 정부는 아예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하는 것을 아예 포기했다.
이후 2019년 정치국이 다시 한번 후에의 중앙직할시 승격을 계획하고 자원을 집중하며 마침내 지난해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됐다. 당시 국회에서도 후에의 산하 도시행정단위의 비율과 1인당 월소득이 전국 평균 대비 낮다는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유네스코가 인정한 고대 수도와 문화유산의 고유한 가치를 보존한다는 데 더욱 중점을 두고, 도시 개발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후에는 매년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데다 험난한 산악지형으로 옛부터 척박함과 어려움이 가득한 지역으로 꼽혔다. 하지만 응우옌 왕조의 문화유산를 비롯해 8개의 세계 문화 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로 각광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