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박물관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13010006405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0. 13. 17:52

<3>캐나다전쟁박물관·美 9/11메모리얼박물관
캐나다 오타와 전쟁박물관 메모리얼 홀
캐나다 오타와 전쟁박물관 메모리얼 홀.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을 경험한다는 건 역사 속의 인간이 겪었던 아픔과 기쁨을 함께 공감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그 공간은 역사뿐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지난 2017년은 '비미 리지 전투(Battle of Vimy Ridge) 100주년'을 맞은 해다. 오타와의 캐나다전쟁박물관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으로 참가한 캐나다 군대의 프랑스 비미 리지 전투 승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열었다. 당시 캐나다군은 전략 요충지 비미 능선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연방 최초로 참전해 장렬하게 전사한 이들의 대부분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고, 독일군과의 사흘 동안 전투에서 3600명이 전사했고 7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전공(戰功)으로 캐나다는 종전 조약의 서명국으로 참가했으며, 비미는 '세계 속에서 캐나다가 탄생한 장소'라 불렸다. 1922년 12월 프랑스 정부는 이 땅을 기꺼이 캐나다 전사자 추모 공간으로 내놓았고, 조각가 월터 올워드(Walter Allward, 1876~1955)는 11년간의 작업 끝에 세계적인 전쟁기념물로도 명성이 높은 기념비를 세웠다.

비미를 기억한다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놀라운 추모 공간이 바로 캐나다전쟁박물관의 메모리얼 홀이다. 이곳은 경사진 회랑으로 이어져 있고, 전시물이라고는 비미 리지에서 인근 카바레루즈 묘지로 옮겨졌다가 지난 2000년에 캐나다전쟁박물관으로 돌아온,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묘비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 앞에 선 관람객의 가슴엔 어느 영웅의 무덤 앞에 선 것보다 더 웅장하고 서늘한 감동이 밀려온다.

11월 11일은 캐나다 현충일인 리멤버런스 데이(Remembrance Day).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1918년 11월 11일을 기리는 날이다.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시간은 오전 11시. 이 시간이 되면 메모리얼 홀의 높은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 온 햇빛은 홀로 놓인 무명용사의 묘비를 따스하게 비춘다. 이 묘비의 주인공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들판에 남겨졌던 한 명의 캐나다 병사. 태양계의 궤도가 교란되지 않는 한, 11월 11일 11시의 그 햇빛은 영원히 그곳을 비출 거라는 이 사람들의 믿음이 놀랍다. 이곳을 찾는 모든 관람객은 이 묘비 앞에 서면 누구든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전쟁박물관을 나와 뒤돌아보니, 박물관 지붕의 끝은 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6만여 명의 병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국회의사당 '평화의 탑'을 향해 있다. 그 꼭대기 창문의 배열은, 혹시 모스 부호(Morse code)를 이해한다면, 'Lest we forget(잊지 않기 위하여)'의 뜻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슬픔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박물관으로 가보자.

2977명의 희생자를 낸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테러의 현장은 '망연자실의 현장'으로 남겨져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사건의 순간을 전 세계가 동시에 인식한 전례 없는 현장. 그곳에는 사람들이 들려주고, 그들이 감싸고 있던 이야기로 가득하다.

뉴욕 9/11 메모리얼 파크
미국 뉴욕 9/11 메모리얼 파크.
어느 날 전시기획자 제이크 바튼(Jake Barton)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 '역사를 만들다'의 뒷얘기를 테드(TED)를 통해 우연히 보았다. 그가 9/11 메모리얼 박물관의 몇 가지 의문을 풀어준다. 그는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 하면서, '우리는 기억합니다'라는 '열린 전시관'에 가공할 테러를 목격한 417명의 증언으로 '오디오 태피스트리'를 만들어, 누구든 길고 어두운 복도에서 '그 순간의 역사'를 듣게 만들었다. 이것은 사건 발생 24시간 동안 10억명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극이 전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말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시간이 지날지라도 그대들이 기억에서 지워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로마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 한 구절로 사람들을 위로한다.

9/11 메모리얼 박물관 밖엔 9/11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그곳에서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당선작으로 선정된 작품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를 만나게 되는데,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설치된 2개의 폭포조형물에서는 테러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과 미국인의 눈물을 상징한다는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 외곽을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청동판이 둘러싸고 있다.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는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이유 있는 침묵'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렇다면 방법은 알파벳 순서가 아닌 사회적 관계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무작위 배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인연이 있던 희생자들끼리 가깝게 모아져 있다. 가족 혹은 같은 직장에 출근해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모아두고 이름을 만나는 유가족들이 기억을 되살리도록 했다. 제이크 바튼은 엄청난 양의 자료를 입력해서, 알고리즘으로 서로 다른 이름을 모두 연결한 것이다. 그렇게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 같은, 익명(匿名)들이 하나하나의 삶을 드러낸 것이다. '너를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던 주인과 직원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장에서는 앱(Apps)으로 사회적 관계로 배열되어 있는 2977명의 이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멋진 기억의 장치들을 마련할 수 있을까. 죽은 자의 흔적과 산 자의 기억이 어울려 도도히 시간을 이어가는 박물관, 사람 사이의 관계로 가득 차 있는 이런 박물관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난 시간의 상처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기억의 강(江)은 감동에 실려 흘러가는 법. 감동이 없는 기억은 세뇌와 다를 바 없다.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