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학부모 "의견수렴 없는 발표=국민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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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교육전문가들은 국가적 주요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찬성 여론 속에 정책을 추진해야 정책 속도가 나기 마련인데, 오히려 국민을 무시한 채 정책만 불쑥 내놓으니 국민의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는 비판이다.
교육부는 들끓는 비난 여론에 대통령실이 '의견수렴' 지시를 내리자, 전날(2일)부터 부랴부랴 학부모 간담회를 긴급하게 마련하는 등 '출구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유치원 학부모 간담회에서도 학부모들은 '5세 입학'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유아교육과 돌봄 강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학제개편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공교육 강화를 위한 하나의 '제안'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학생 수와 학교시설 현황 등이 입학연령 조정을 감당할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해 논의를 꺼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박미정 씨는 "철저한 의견수렴이나 공론화 없이 발표한 것에 대해 절차적·형식적으로 누구 하나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정책을) 강행하지 말고 전면 재검토 해달라"고 말했다. 학부모 곽유리 씨도 "정부의 이런 무성의하고 경솔한 발상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화가 났다"며 "교육 주체인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반대한 정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제 자체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권영은 씨는 "오늘 출근을 미루고 여기 온 건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책 때문"이라며 "졸속 행정을 철회하고, 혼란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교육계와 학부모,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의견수렴 절차' 없이 강행된 일방적 발표가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가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을 단 한 번의 의견수렴도 없이 기습발표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물론, 교육정책을 의결하는 국가교육위원회까지 무시한 채 일방적인 발표를 한 것은 현 정부의 정책조율 능력이 부재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나아가 과거 국책연구기관과 정부 연구과제를 수행한 연구진 대부분이 취학연령 하향에 대해 '부적절'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교육부가 정부 정책연구 결과물마저 무시하고 학제개편을 강행하려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무리 옳은 정책이어도 의견수렴은 필수다. 의견 수렴을 통해 현실성을 감안하고 우려되는 부분을 완화할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이 전혀 없이 장관이 느닷없이 발표를 해버리니 반발이 커지는 것"이라며 "마차 앞에 말이 있는 게 아니라 말 앞에 마차가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책'이라는 마차가 '국민'이라는 말의 힘으로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정반대가 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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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가의 중장기 교육정책을 담당할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를 출범도 미룬 채 그 역할과 기능을 무시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국교위는 지난 21일 출범 예정이었지만 법적 시한을 넘긴 상태로 여전히 미정이다. 국교위는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대학입시와 교육과정, 교육재정, 기초학력 진단 등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교육 현안들을 논의하고 의결한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10조에 의하면, 학제개편 등 주요 교육정책에 관한 사항은 의결 사항으로 국교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정책 추진이 어렵다.
박 교수는 "국교위가 탄생한 배경은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교육제도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라며 "국교위에서 의결한 사안은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바꾸지 못하게 한 것인데, 이러한 국교위 역할과 기능을 무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장관이 발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2007년과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국책연구기관에서 진행한 학제개편 정책연구에서 '부적절'하다는 의견과 소요 예산이 30조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초등학교 만 5세 입학에 대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이 반대했다. 초중고 및 대학교 교원과 교육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6년 조사에서는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에 대해 응답자 1207명 중 72.9%가 반대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5세 취학제 도입에 있어 아동 발달과 경제적 비용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이해관계집단의 호응 또는 반발"이라며 "학제개편 같이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경우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시되지 않고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2010년 육아정책연구소는 정부에서 수탁한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연구' 최종 보고서에서는 만 5세가 초등학교에 편입될 경우 초중고등학교의 신설 및 학급 증설비 규모에 따라 4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 예산을 산출했는데, 현 정부가 검토한 3개월 단위로 25%씩 분할 편입하는 방안에 대해 29조7242억~33조1642억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역대 정부에서 논의하다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거둬들인 사안인데, 이를 무시하고 의견수렴도 안하고 무작정 '지르고 보는 식'의 발표를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국책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기본 중 기본이다.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