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현금 100조원 쌈짓돈 아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현재 상태를 첨단기술로 찍어내리는 미국과 대규모 투자를 하는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로 표현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점이었던 오너 중심의 신속한 의사결정은 개혁 요구 앞에 힘을 잃었고 노조와 준법감시위원회 등 경영에 간섭하는 입김은 더 강해졌다. 리스크는 커진 사이에 강점은 사라진 셈이다.
약 25년 전인 1994년 삼성의 최연소 부사장이었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임원 회의 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시나리오 발표했다. 그때 나온 2가지 시나리오는 ‘인텔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재진입’과 ‘일본의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중단’이었다. 소름 끼치게도 이 시나리오는 실현됐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이어 인텔마저 메모리 사업에 재진입했다. 특히 반도체 절대 강자인 인텔의 등판은 치킨게임이 시장에서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시험 받고 있는 데도 우리 사회만 모르는 듯하다. 연 매출 200조원 이상을 버는 기업임에도 시가총액에선 애플과는 비교조차 안 되고 TSMC와 비슷한 300조원대 수준인 게 냉정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평가다. 그럼에도 정계와 진보지식인들은 삼성전자가 불패의 함대이며 뭐든지 해줄 수 있는 화수분으로 아는 듯하다. 그들은 삼성전자의 현금 100조원을 공공 쌈짓돈 정도로 여기나 그 돈은 미래 경쟁력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격변하는 산업 생태계에서 무적은 없다. 삼성전자도 미래를 걱정하는 기업 중 하나일 뿐이란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