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국면 초입 '이념전쟁'…'포스트 국감' 정국주도권 맞물려 격화
대기업 연구소장 만난 문재인 전 대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대 기업 경제연구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의견을 구한 뒤 기권했다는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는 주말인 15일에도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여권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당시 표결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며 이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고 날을 세웠고, 이에 더민주는 야권이 내년 대선을 겨냥해 또다시 근거없는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다고 일축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문 전 대표는 북한에 사전의견을 구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한 직접 언급을 피한 채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다수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고 도리어 역공을 취하고 나서 공방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앞서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펴낸 '빙하는 움직인다'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견해를 문재인 당시 실장이 수용했으며,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뜻을 존중해 기권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새누리당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이번 사안을 '북한정권 결재 사태'라고 규정한 뒤 "대한민국의 일을 북한정권으로부터 결재를 받은 것은 국기를 흔드는 충격적인 사태"라며 엄정한 대처를 강조했다.
염 대변인은 "2007년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의 표결 당시 북한정권에 의견을 묻고 기권을 하는 과정에 문 전 대표가 중심 역할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자 더민주가 특유의 잡아떼기 공세를 하고 있다"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소재면 잡아떼고, 사실이 아니어도 의혹만 있으면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정치공세를 하는 특유의 이율배반적 행태"라고 야당을 비판했다.
염 대변인은 "북한 정권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색깔론이라고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며 "문 전 대표의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철 지난 색깔론 공세로 대충 넘어가려는 구태정치도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의혹에 대해 "문 전 대표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고, 국기를 문란시킨 사태"라며 "천부인권이 철저히 유린되고 있는 북한동포의 인권에는 '기권'하고, 북한동포를 억압 탄압하는 북한정권에 '결재'받는 문 전 대표가 북한 인권 개선을 말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고 공격했다.
박명재 사무총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문 전 대표는 단순한 종북(북한을 추종함) 세력이 아니라 북한의 종복(從僕·시키는 대로 종노릇함)이었다"고 맹비난했다.
박 사무총장은 "문 전 대표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는데, 이것도 북한에 물어보고 반대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이런 분이 지난 대선에 출마했고, 내년 대선에서 대권을 잡는다면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을 북한 뜻에 따라 하겠다는 것인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성원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이를 계기로 '대북송금 특검'도 본격 추진해야 한다"며 "왜 북핵 개발이 속도를 냈고, 북핵으로 우리의 존망이 위협받게 됐는지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더민주는 이런 새누리당의 공세를 '색깔론'으로 일축하고 그 배경에는 권력형 비리를 가리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이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를 깎아내리고 권력 게이트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정치공세를 펼치는 것은 정말 후안무치하다"라며 "정상적인 대북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한 것이 왜 정체성을 의심받아야 할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윤 대변인은 또 "새누리당이 공당이라면 지금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은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와 국정농단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보이콧과 증인채택 방해로 국감을 파행으로 몰아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비방으로 국감을 망치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당사자인 문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기권 결정에 대해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다수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상황을 소개하면서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정상선언이 있었고 후속 남북 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었다"며 "외교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찬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통일부는 당연히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대부분 통일부의 의견을 지지했다. 심지어 국정원까지도 통일부와 같은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은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다수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는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가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현 정부를 향해 역공을 취했다.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는 대북송금특검, 이라크파병,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 등 중요한 외교안보사안이 있을 때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며 "노 대통령은 언제나 토론을 모두 경청한 후 최종 결단을 내렸다"며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는 법이 없었다. 시스템을 무시하고 사적인 채널에서 결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부터 2005년 동안에도 외교부는 늘 찬성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비해, 통일부는 기권하자는 의견이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가운데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사실 확인이 더 돼야 할 부분이 있다"라며 반응을 삼갔다.
국민의당 역시 더민주와 함께 대북포용 정책 기조를 보이고 있지만 친노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문 전 대표에게는 사안에 따라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국 주도권 경쟁과 맞물리면서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진입함에 따라 야권 유력주자인 문 전 대표의 '대북관'을 놓고 여야가 이념전쟁에 돌입하는 모양새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8대 대선 때도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겪은 바 있다.
특히 최근 미르·K스포츠재단 등 연일 불거지는 권력형 비리 의혹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고 있던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번 의혹을 적극 쟁점화하며 국면전환을 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전날 저녁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규명할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문 전 대표를 종북(從北)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등 발 빠르게 파상 공세를 개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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