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영토 내 인도 집단거주지 111곳 1만7158 에이커(ac·70㎢)는 방글라데시 영토에, 인도 내 방글라데시 거주지 51곳 7100ac(29㎢)는 인도에 각각 편입됐다. 방글라데시가 1만ac(41㎢)의 영토를 더 얻게 된 셈이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배에 해당한다.
2011년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인도 거주지에는 3만7369명이, 인도의 방글라데시 거주지에는 1만4856명이 각각 살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내 인도 거주지에 사는 979명은 인도 국적을 선택했다. 이들은 11월말까지 현 거주지를 떠나 인도 북동부 웨스트 벵갈의 새 거주지로 이주해야 한다. 이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생활하던 곳에서 그대로 머물기를 원하는 부모를 떠나 이주해야 하는 젊은이들도 다수 포함됐다.
반면 인도 내 방글라데시 거주지 주민 가운데 방글라데시 국적을 선택한 주민은 한명도 없었다.
인도 외교부는 “1일은 인도·방글라데시 양국에 역사적인 날”이라며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된 1947부터 지속된 해묵은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됐다”고 했다.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주민들도 국경협정 발효를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젊은이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이들은 수십년 동안 국경문제 때문에 무국적 상태로 살아왔고, 거주지는 양국 정부로부터 소외돼 낙후된 지역이었다. 제대로 된 도로가 없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식수 문제도 심각했다.
새롭게 인도 영토가 된 마샬단가(Mashaldanga) 주민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인도 국기를 흔들며 협정 발효를 축하했다. 축하행사장 입구에는 지난달 27일 별세한 압둘 칼람 전 인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꿈은 잠 잘 때 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방글라데시 영토가 된 다시아르 치하라(Dashiar Chhara)의 주민들은 몬순기의 비를 축복이라고 반기고, 비로 진흙탕이 된 거리를 방글라데시 국가를 부르면서 행진했다. 다른 주민들을 68년 동안의 고통을 의미하는 68개의 촛불을 밝혔다. 촛불은 든 한 여성(20)은 “이제 나도 정부 수반이 될 수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여성(18)은 “이제야 완전한 인권을 가진 인간이 됐다”고 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7년부터 시작된 영토문제는 1971년 인디라 간디 총리 시절 인도의 군사적 개입으로 9개월간 전쟁 끝에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양국은 1974년 국정협정에 합의했다. 하지만 양국 정치 지도자의 암살 등 국내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인도 헌법 개정 문제가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인도 국회가 헌법 119조 수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합의 41년만에 협정이 비준됐다. 이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6월 6일 방글라데시를 방문,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를 만나 국경협정 비준서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