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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기러기 아빠·외동..판교참사 안타까운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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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 기자

승인 : 2014. 10. 18. 19:24

환풍구 추락사고로 변을 당한 시신 16구가 안치된 경기 성남지역 병원 장례식장에는 사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슬픔이 가득했다.

18일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제생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로 숨진 정연태(47) 씨의 친구 김모씨가 유족과 함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흐느꼈다.

김씨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한 달 전 정씨 부부와 함께 남이섬으로 떠난 여행에서 밝게 웃는 정씨와 부인 권복녀(46·여)씨의 사진이 떠있었다.

정씨의 초등학교 동창 89명이 가입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방에서도 정씨 부부가 찍어 올린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김씨는 “이렇게 자주 사진을 올려서 부부 금실이 좋기로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며 “결국 쉬는 날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친구가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하다가 다리를 다쳐 몸이 불편한데 항상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며 “판교 정보기술(IT)업체 건물 관리 일을 하며 다음 달에 있을 자격증 시험 준비도 꾸준히 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 유모 씨는 “초등학생 늦둥이를 포함해 삼 남매를 뒀는데 아이들이 걱정”이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정씨 부부는 사고 직후 이 병원에 안치됐다. 부인 권씨는 애초 신원미상 사망자로 남아있다가 뒤늦게 신원이 밝혀져 부부가 참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고 현장에서 공연을 보다 고인이 된 A씨는 처와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인 두 아들을 중국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였다.

분당지역 한 엔지니어링 회사를 다니던 그는 내년 2월쯤 가족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고 두 달전 새 보금자리로 전셋집을 얻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다며 유족들은 안타까워했다.

A씨의 매제인 유모(48)씨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고 했다. 자식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외동아들, 외동딸들의 사고소식이 연달아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주검이 된 조카 B(31)씨의 소식을 듣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찾아온 김모씨는 “사고도 사고지만 큰누나가 걱정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큰누나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조카가 뒤늦게 대학과정 공부를 하러 다닌다고 들었는데 이런 사고를 당할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B씨는 공연장을 찾은 친구와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희생자 C씨 역시 외동딸이었다.

C씨의 이모라는 한 유족은 “내가 하나뿐인 이모였다. 그 착한 아이한테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내 동생이 홀로 키워온 소중한 딸이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C씨는 사고당일 D(27·여)씨 등 직장 동료들과 회사건물 바로 앞 광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다가 동료와 함께 사고를 당했다. D씨의 시신은 C씨와 같은 병원 안치실에 모셔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두 희생자의 주민등록상 생일은 같았다.

C씨의 이모부는 “한 회사 동료 서너명과 같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중 한명을 같은 병원 안치실에 있고 나머지 남자 동료도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사고에 빈소에는 유족들의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5개의 빈소가 차려진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아이고’라는 유족들의 통곡소리가 새어나왔다. 일부 유족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부축을 받으며 이동했다.

일부 유족들은 장례절차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빈소를 차리지 않고 있다.

한 유족은 “세월호 사고 때 안전사고 후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했으면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책임 있는 사람에게 확인한 뒤 답변을 주겠다던 공무원들은 함흥차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4시부터 분당구청에 모여 앞으로의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

한편, 독일 순방일정을 중단하고 귀국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을 차례로 방문해 유족을 만나 ‘죄송하다’며 위로했다.
박정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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