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김진희씨(42·서울 목동)는 사고 이후 자녀의 하교가 조금만 늦어져도 혹여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불안하다.
김씨는 집 안팎을 오가며 아들을 기다리다가 늦게 돌아오면 불같이 화를 낸 후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다. 잠까지 설치면서 밤새도록 방에 불을 켜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잠자리에 드는 일이 많아졌다.
주부 민연숙씨(43·서울 창동)는 “중학교 1학년인 딸 하나를 두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늘 신경을 많이 써왔다”며 “사고가 발생하고부터 혹시 길에서 쓰러지지는 않을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지 괜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초등생 아들(5학년), 딸(4학년)을 둔 김형숙씨(여·38·경기 고양시 행신동)는 요즘 설거지를 하다가도 세월호 침몰 뉴스만 나오면 눈물을 흘린다. 안산 단원고 학생이 당한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집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밤잠도 설친다. 침몰하는 배를 빤히 바라만 보면서 우리의 아들 딸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심한 자책감으로 우울증까지 겪고 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불거진 당국의 혼선에 대한 불신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주부 김현주씨(51·서울 흑석동)는 “이번 사고로 희생당한 학생들 대부분이 ‘선실내에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안내 방송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것 같다”며 “이제 아이들에게 ‘어른 말 잘 듣고, 규칙 잘 지켜라’라는 교육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김씨는 “사고 대처 과정에서 정부와 공권력, 어른들의 무능력과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나라 전체가 가치관 붕괴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 이모씨(50·경기 안양시)는 “이번 사고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님이 입증됐다”며 “사고 대처과정과 정부 관료들의 개념 없는 행동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이번 기회에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인사들을 교체하는 등 국가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몇몇 주부들은 사고 후 미디어 접촉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직장인 주부 김모씨(48·서울 문래동)는 “TV·신문·인터넷 등 각 매체를 보는 것조차 겁이 난다”며 “참다 참다 어렵게 시청하면 또 낙담하고, 참담하고… 눈물이 계속 난다”고 말했다.
서민자씨(43·경기 의왕시)는 “TV만 틀면 사고 관련 뉴스가 나와 노이로제에 시달릴 지경”이라며 “애도 분위기 속에서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결방하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차라리 빨리 정규방송을 재개해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웃음을 찾는 것도 어떨까 싶다”고 했다.
서씨는 “결방이 옳은지, 재개가 옳은지는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너무 심각한 우울감에서 나온 말이니 나쁘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