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율 전 국세청장 |
이것은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과 교수 루틴(Reinhard Ruthin, 1905~1962)이 그의 책 '미국의 선동가들'(American Demagogues, 1954)에 써 놓은 말이다. 그는 본래 링컨 대통령 연구로 정평이 나 있다. 아울러 선동정치의 역사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다. 그의 말을 부연 해설하자면 이렇다.
첫째, 선동가는 대중연설을 잘한다. 연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논리적, 이성적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연설이다. 다른 하나는 청중들의 이성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는 연설이다. 루틴이 말하는 "대중연설"이란 후자, 즉 청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연설을 가리킨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에도 이런 연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사람이 있었다.
둘째, 선동가는 아첨과 욕설을 잘한다. 본인이 아첨을 잘할 수도 있고, 남이 자신에게 하는 아첨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루틴이 말한 '욕설(invective)'은 거칠고 험한(harsh and rude) 욕설, 즉 상스러운 욕설을 말한다. 듣기조차 민망한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동가 기질이 다분하다는 뜻이다.
셋째, 선동가는 결정적 이슈를 교묘히 회피한다. 곤란한 질문에 먼 산만 바라보고 대답하지 않거나 엉뚱하게 동문서답을 한다. 때로는 자신이 잘못한 일을 '저 사람이 몸통이다'라며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또 필요하다면 위증을 교사(敎唆)하고도 오리발을 내민다.
넷째, 선동가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약속한다. 그동안 국민에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시리즈(series)로 해주겠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다섯째, 선동가는 대중의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한다. 선동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대중의 감성에 호소한다. 그래서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적 구호를 즐겨 쓴다. 예를 들면 '독재정권'이라고 말할 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증거 조작'이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증거가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자초지종은 말하지 않는다. 그냥 '독재정권 물러나라', '조작 수사 중단하라'고 외친다.
여섯째, 선동가는 인종적, 종교적, 계급적 편견을 불러일으킨다. 특정 인종이나 종교, 또는 특정 계층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선동가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갈라치기 하는 것이다.
일곱째, 선동가는 원칙에 대한 의지가 없다. 원칙 없이 이랬다저랬다 말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선동가라는 말이다. 불체포 특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일이 생기면 은근슬쩍 그 뒤에 숨으려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
루틴은 6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런데도 최근 대한민국에 다녀가기라도 한 듯이 우리 실정에 딱 맞는 정의를 내렸다. 누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루틴이 말한 여덟 가지에 모두 해당한다면 그는 틀림없는 선동가이다. 그 선동가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유권자인 국민뿐이다.
선동가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것은 진보 보수, 또는 여야의 정파적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미래가 달린,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선동가 클레온, 시민들을 개처럼 끌고 다닌 선동가 클레온에서 시작된 선동정치 때문에 결국은 멸망한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문명국 아테네가 그 반면교사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