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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억새’게 운 좋은 사람들만 가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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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11. 10. 13. 11:42

떠나가 보자-'서해안 억새 1번지' 홍성 오서산
나무계단을 따라 오서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객들. 서쪽 사면이 억새밭이다.
푸른 하늘과 함께 억새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는 연인.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아시아투데이=양승진 기자] “가을이 왔다는 기별은 이렇게 하는 가보다.”
충남 홍성의 오서산(烏棲山)은 정상부위에 핀 억새물결이 마치 날개옷을 입은 듯 펄럭인다.
이제 막 서해를 건너 온 바람이 아직도 어지러운 듯 일렁일 때마다 산길은 온데 간 데 없이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펄럭이는 깃발처럼 나부낀다.
그 순간 점점이 떠 있던 섬들이 올망졸망 뭍을 향해 기어오르고, 숨어 있던 황금들판은 마치 비단 잉어의 비늘처럼 빛난다.
떨어지는 해가 아쉬운 듯 세차게 손을 흔드는 억새 명산의 파노라마가 시작됐다.
억새 게 운 좋은 사람들만 찾아가는 그 곳, 그곳이 오서산이다.
                                /홍성=글·사진 양승진 기자 ysyang@asiatoday.co.kr

억새물결 속을 거니는 등산객의 원색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오서산은 충남 홍성과 보령, 청양의 경계지점에 있다.

790m로 그리 높진 않지만 서해 해수면과 맞닿은 탓에 등줄기에 제법 땀이 날 정도로 가파르다.

예전엔 까마귀가 많이 살아 까마귀 보금자리(烏棲) 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그 대가 거의 끊겨서인지 한 마리 구경하기도 힘들다.

사실 오서산은 홍성과 보령, 청양에 걸쳐 있는 탓에 어느 쪽으로 올라도 무방하지만 홍성 시내에서 가까워 이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정암사까지 찻길이 열려 크게 힘들이지 않고 갈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홍성 시내에서 차로 한 10여분 거리에 있는 상담마을이 오서산 산행 기점이다.

많은 코스가 있지만 1코스는 상담주차장~아차산~던목고개~오서정~정상~병풍능선~공덕고개~광성~사방댐~광성주차장(5시간), 2코스는 상담주차장~정암사~오서정~정상~쉰질바위~능선삼거리~쉼터~담산리~주차장(2시간30분), 3코스는 상담주차장~정암사~오서정~정담마을(2시간) 이다.


정암사로 오르는 들머리에 가을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다. 
빠른 길은 정암사에 주차하고 능선을 타고 바로 억새군락이 있는 산 정상에 올랐다가 이 길을 다시 내려오던지 아니면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쪽으로 하산해도 된다.

또 정암사를 지나 능선고개에 오른 뒤 주능선으로 정상에 올라 남릉으로 내려가 성연리로 하산하는 코스도 있다.

정암사에서 시작해 느릿느릿 걸어도 1시간3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정암사 해우소를 돌아 산행을 시작하면 30분 정도 가파른 계단 길에 다리가 파르르 떨려온다. 마치 억새를 보러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몸부터 억새를 닮아가는 듯하다.

계단 길 끝에서 능선 길을 타면 가파르지 않은 바위 길을 지나 억새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서산 정상의 억새밭을 찾은 등산객들.
그렇게 크지 않은 억새는 서쪽 사면에만 늘어서 있어 이채를 띤다. 탐방로가 너무 훼손되자 지금은 나무계단과 널찍한 쉼터를 설치했는데 이곳이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서해 바다가 한 눈에 조망돼 장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올망졸망한 섬은 외로운 나머지 어떻게든 내륙에 붙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고 바다위의 배는 그저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다.

여기에 날씨만 좋으면 천수만 등 간척지를 굽어보는 맛은 그저 덤이다.

남쪽으로 성주산, 북쪽으로 가야산, 동쪽으로 칠갑산, 계룡산까지 내다보인다.

동쪽으로 몸을 돌리면 홍성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이 일대 들판은 황금색이어서 가을 들녘의 모습이 마치 장수의 갑옷처럼 빛난다.


오서산 정상에서 홍성쪽으로 보면 황금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능선이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용허리나 대문바위, 신랑신부바위, 농바위 등과 같은 단애, 암봉, 암주 등은 오서산을 수놓는 조연들이다.

주변지역에 높이 15~30m, 폭 25~70m에 이르는 암봉과 암석단애가 있고, 500m 부근 산록에는 2~3m 직경의 토르(tor)들이 3~5개가 집단으로 분포하는 곳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정암사 쪽 계곡은 군데군데 바위들이 제법이고 정상부위 못미처 소나무 군락지에는 시루떡을 세워 놓은 듯한 바위들이 파헤쳐져 날을 세우고 있다.

가을 오서산의 압권은 누가 뭐래도 억새다.


오서산 정상부위 억새밭에서 사진을 찍는 등산객.
정상부위 서쪽 경사면에 그리 넓진 않지만 하늘거리는 억새가 파도치듯 일렁인다.

오후 3~4시쯤 억새밭에 들어서면 그 황홀감에 정신까지 몽롱해질 정도다.

이곳 억새는 서해 바닷바람 때문에 큰 키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저 눈높이에서 하늘거려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 부분만 보였다 안보였다 할 정도로 아담하다.

오서산 억새는 하늘, 산, 바다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바람 부는 방향에 맞춰 하루 종일 인사를 하는 통에 그렇게 겸손할 수가 없다.

항해하는 선박들의 나침반 구실을 할 만큼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서해의 산들이 낮은 탓에 오서산 정상에 서면 산에서 산을 내려다보는 풍광 또한 막걸리 처럼 걸쭉하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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