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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국 칼럼] 헌법은 정치적 정언 명령이다

[고성국 칼럼] 헌법은 정치적 정언 명령이다

기사승인 2024. 09. 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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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국가론' 논란을 보며-
고성국 주필
고성국 아시아투데이 주필, 정치학 박사
문재인 정권 때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이 문재인 정권의 최대 성과로 내세우는 9·19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등 문재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하지 말자.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 통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고 주장했다.

임종석의 '두 국가론' 주장에 앞서 김정은은 작년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하고 '우리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거하자'고 교시했다. 이 회의에서 북한은 남북회담을 주도해 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남북 당국 및 민간교류를 전담해 온 민족경제협력국 그리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담당해 온 금강산 국제 관광국을 폐지했다. 김정은은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 3대 헌정 기념탑'도 철거해 버리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의 교시가 있은 후 대한민국에서 통일을 내세우면서 종북활동을 해온 많은 좌파단체들이 단체를 해체하거나 간판을 내렸다. 김정은의 말 한마디로 한반도에서 순식간에 '통일'이 사라져 버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임종석의 이번 발언은 김정은의 이러한 '통일 부정, 남한 적대시' 교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임종석의 발언이 전해지자 정치권에서 강력한 비판이 쏟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평생을 통일 운동에 매진하면서 통일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자 갑자기 자신들의 주장을 급선회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의 통일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반통일·반민족세력이라고 규탄하더니 하루아침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명령한 자유민주주의 평화 통일 추진 의무를 저버리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정부에서도 강력한 비판과 성토가 이어졌다. 한덕수 총리는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헌법에 어떻게 통일해야 하는지까지 나와 있는데 무슨 권리로 따로 살자는 것인가. 헌법 3조를 보면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돼있는데 어떻게 두 나라인가. 또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평화적 통일 질서를 지향한다'고 돼 있다"면서 '두 국가론'을 반(反)헌법적 망언으로 규정하고, "김정은이 바꾸니 우리도 바꾸자면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 없다"고 강력 비판했다.

이렇게 되자 성난 민심에 화들짝 놀란 야권도 임종석 비판에 가세했다. 이재명은 임종석의 발언이 "헌법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며 당 강령과도 맞지 않는 주장이고 당론과도 다르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당이 서둘러 임종석과 선을 긋는 양상이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여야 정치권 모두가 임종석의 '두 국가론'을 망언으로 규탄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임종석의 '두 국가론'이 반헌법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종북좌파들은 어제도 오늘도 반헌법적 행동과 발언을 하면서도 정략적으로 필요할 때는 헌법을 갖다 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헌법이 갖는 절대적 권위, 헌법이 정치적 정언 명령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철학자 칸트는 정언 명령을 '무조건, 반드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명령'이라고 정의한다. 정언 명령은 그 자체가 목적이자 최고의 가치다, 상황에 따라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수단이 아니다.

근대 시민혁명으로 등장한 근대적 국가는 헌법이라는 국가의 기본 법칙과 최고의 규범에 의해 성립된다. 헌법이 없으면 근대국가는 없다. 1948년 7월 17일 제정 공포된 제헌헌법이 없었다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과 정부수립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국가의 기본질서이자 최고의 규범인 헌법은 곧 정치적으로 칸트가 말한 정언 명령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에 반하는, 더 나아가 헌법을 부정하는 언행은 그 자체만으로 국가의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반(反)국가적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두 국가론'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사법적으로도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반국가적 행동인 이유다.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합의에 기초한 것이므로 국민 절대 다수가 원한다면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정언 명령이자 국가질서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에 해당되는 헌법을 아무렇게 함부로 바꿀 수는 없다. 헌법 개정 절차를 국회 3분의 2의 찬성(200석) 후 국민투표 과반수 참여, 과반수 찬성으로 엄격하게 규정해 놓은 것은 헌법의 안정성과 정치적 권위를 지켜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위헌적 입법을 강행하고 반헌법적 언동을 함부로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안정적 유지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운용 시스템을 뿌리부터 흔드는 심각한 반국가적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종석의 '두 국가론'에 대해 정치적·도덕적 질타를 넘어 엄정한 사법적 응징이 즉각 필요하는 점을 정부와 정치권 모두 깊이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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