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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호기심은 문명의 기초, 배우고 익히면 즐거운 이유

[연재] 호기심은 문명의 기초, 배우고 익히면 즐거운 이유

기사승인 2024. 07. 2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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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1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이 연재물은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송재윤 교수가 외계인에게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다. 매우 독특한 상상으로 들리겠지만 이 지구인의 세계사는 '지구 중심성을 벗어나 행성 사이'의 관점을 추구한다. 이것은 그만큼 매우 좁은 민족이나 국가를 떠나 인류의 보편적인 '객관적' 관점 혹은 더 큰 보편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겠다는 뜻이다.
송재윤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테네시 주립대학교를 거쳐서 2009년 이후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중국 근현대사와 정치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1세기 중국의 국가개혁과 유가경학사의 관계를 조명한 학술서 Traces of Grand Peace: Classics and State Activism in Imperial China(Harvard University, 2015)와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영문소설 Yoshiko's Flags(Quattro Books, 2018) 등이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중화제국사의 정치 담론을 집약한 학술서적 Share and Rule과 "슬픈 중국"의 제3권 '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를 집필하고 있다. <편집자 주>

◇ 지구인은 왜 호기심을 갖는가?

외계인 미도가 내게 물었다.

"지구인은 진실로 호기심 많고 상상력 넘치는 존재들 같아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의 교향악은 은하계 범우주적 섭리와 대자연의 신비를 영적으로 포착한 정교하고 섬세한 걸작들이죠. 음악뿐만이 아니죠. 선사시대 동굴벽화에서 현대의 전위 미술까지 지구인들은 시각적 체험을 깊은 예술로 승화시켰죠. 혀로 느끼는 맛의 감각은 어떠한가요? 지구 어디를 가나 다양한 음식 문화로 꽃피어 있죠. 후각에서도 지구인들은 자연의 내음을 다채롭게 조합하여 신비로운 향수의 세계를 창조했죠. 게다가 지구 모든 지역 어느 문화권에나 숱한 댄서들이 몸을 움직여 아름다운 춤사위를 만들어냈지요. 그 모든 성취가 호기심과 상상력의 산물이라면, 지구인은 대체 왜 호기심과 상상력을 타고났을까요?"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빽빽한 숲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두 마리 사슴 앞에 멈춰서고 말았다. 덩치가 제법 큰 어미 사슴은 갓 태어난 어린 사슴의 등을 정성스레 핥아주고 있었다. 어미도, 새끼도 자전거를 탄 나를 보고서도 그다지 놀라지는 않은 듯했다. 조심스레 자전거에서 내려 슬그머니 다가갔을 때, 두 사슴은 투명한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빛을 보면서 최소한 5초 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린 사슴의 청명한 눈빛에 반해서 나는 넋 놓고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사슴들도 나를 보고 궁금해하는 듯했다. "대체 두 발로 서서 걷는 저 동물은 어떤 존재일까?" 하고. 그런 의문이 사슴의 뇌리에 스쳐 갔을 듯하다. 숲으로 슬금슬금 사라지면서도 녀석들은 고개를 돌려 힐끔힐끔 나를 보면서 갔기 때문이다.

정교한 거미줄
거미의 DNA 정보체계 속에는 제 몸에서 실을 뽑아 그물을 짜는 프로그램이 이미 내장돼 있다. 공공부문.
그렇다고 사슴들에게 호기심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저 일시적 궁금증일 듯하다. 그 녀석들과 달린 나는 그날 밤 사슴이란 동물의 지능과 습성에 관한 동물학적 논문들을 들춰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미도의 질문을 떠올리며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슴이 인간처럼 호기심을 갖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
까? 아니, 지구인은 왜 그토록 커다란 호기심을 타고났을까?

◇ 호기심은 학습의 원천

거미는 DNA 정보체계 속에 이미 몸속에서 뽑아낸 줄을 정교하게 엮어서 그물을 짜는 기술을 갖고 태어난다. 거미는 배워서 집을 짜는 게 아니라 뇌리에 이미 깔린 프로그램을 따라서 집을 짓는다. 어미 거미는 새끼 거미에게 집을 짜는 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6각형의 결집체로 정교한 집을 짓는 꿀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날 때부터 집 짓는 기술을 타고났다.

거미나 꿀벌과 달리 지구인의 DNA 정보체계 속에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미리 내장되어 있지 않다. 그 어떤 동물보다 머리가 크고도 좋다는 지구인은 오직 학습 능력만을 갖추고서 이 땅에 태어난다. 지구인은 유전자에 본능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최소화하고, 대신 뇌의 용량을 최대화하는 진화 전략을 택했다. 비유하자면, 지구인의 뇌는 최고의 프로세서가 장착된 최첨단의 컴퓨터이지만, 그 어떤 소프트웨어도 깔려 있지 않다. 아무리 큰 용량에 빠른 제어장치가 있다 해도 컴퓨터에 소프트웨어가 깔리지 않으면 깡통에 불과하다. 지구인의 두뇌도 마찬가지다. 오랜 학습 과정을 거쳐 경험적 지식을 쌓고 논리적 사유의 방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지구인은 두뇌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다. 아니, 험난한 세상에서 제대로 생존조차 할 수가 없다. 요컨대 지구인은 학습을 통해서 앞선 세대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전해 받아야만 비로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앞선 세대가 장구한 세월을 거쳐 터득한 생존의 비법과 삶의 지혜를 짧디짧은 한 생애에 배우기란 실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학습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오랜 시간의 땀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지구인은 공부를 요구하는 선대의 눈을 피해서 틈만 나면 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려 한다. 모두가 공부를 싫어함에도 전체로서의 인류는 학습을 멈추지 않는다. 왜 그러할까? 바로 지구인은 저마다 제 나름의 호기심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미도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묻는다. 지구인은 왜 호기심을 타고났는가? 바로 학습을 통해서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왜?"라는 물음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내 알고 싶어 하는 지구인의 근원적 충동이다. 지구인은 목마를 때 물을 찾고, 굶주릴 때 먹이를 찾듯 궁금증이 생기면 답을 찾기 위해 몸서리치게 괴로워하기도 한다. 호기심이 없다면 공부란 정신적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호기심이 없다면 지구인은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 수가 없으며, 새로운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쉽게 말해, 호기심은 인간을 학습으로 이끄는 자기 계발의 동기라 할 수 있다.

◇ 배우고 익히면 왜 즐거운가?

섹스에 쾌감이 없다면 자발적 짝짓기는 발생할 수 없다. 배움에 기쁨이 안 따른다면 지적 전승이나 창조적 사유는 일어날 수 없다. 짝짓기가 중단되면 멸종(滅種)은 불가피하다. 지적 전승과 창조적 사유가 멈춘다면 인류의 보전은 힘들어진다. 섹스가 기쁨을 주듯 공부에도 즐거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인류의 종적 지속이 가능해진다.

정교한 꿀벌집
꿀벌의 DNA 정보체계 속에는 육각형 집결체의 벌집을 짓는 프로그램이 이미 갖춰져 있다. 공공부문.
아마도 그래서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의 첫머리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 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경구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형이상학>>제1장 1절에서 "모든 인간은 본성상 알고 싶어 한다"면서 "우리가 감각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하지 않았을까?

고대의 두 철인이 지적하듯, 지구인은 호기심을 타고났다. 호기심이 없다면 배움도, 익힘도 없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고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지구인은 때론 큰 기쁨을 얻는다. 기쁨을 느끼기에 지구인은 배우고, 또 익힌다. 지구인의 문명은 분명 배움의 기쁨에서 기원했다.

호기심은 지구인이 자발적으로 "왜(why)?"라는 질문을 던질 때 생겨난다. 왜 지구인은 왜란 질문을 하는가? 진화 과정에서 지구인의 뇌 용량은 점점 커지면서 학습의 부담은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한 진화의 결과 지구인들은 틈만 나면 "왜?"라는 질문과 시름하게 되어 있다.

최근 <<왜(Why)?>>(Stanford University, 2024)라는 제목의 철학서를 펴낸 프랑스 철학자 피립 인망(Philippe Huneman)에 따르면, "왜?"라는 의문사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1) 사태의 원인(cause of an event), 2) 믿음의 이유(reason of a belief), 그리고 3) 행위나 존재의 목적(purpose)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지구인은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적 사유를 전개한다.

어떤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선 합리적 이유나 근거를 밝히는 논리적 사유를 계발하게 된다. 행위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따지는 과정에서 지구인은 정교한 형이상학적 탐구까지 나아갈 수 있다. 지구인들은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문명을 일으켰다.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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