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만난 21명 중 2명만 위치 인지
"근처에 있었냐" 되레 놀라는 모습도
급수·방호물자 갖춰 유사시 국민보호
노인 등 취약계층에 적극 홍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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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아파트 주차장 안내 요원으로 근무하던 조태현씨(21)는 해당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민방위 대피시설로 지정된 사실을 몰랐다. 조씨는 "미사일 같은 게 떨어지면 단단한 건물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 줄은 평소에도 알고 있었다"면서도 "주차장에 '대피소'라고 적힌 안내문을 오늘 처음 발견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면 주민들에게 지하 주차장이 대피시설이라고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대남 오물풍선을 잇따라 살포하자 우리 군이 전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는 등 남북 간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민들이 비상사태에 찾을 민방위 대피시설 위치를 평소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오전 만난 서초구 주민 21명 중 인근 대피시설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시민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3년째 거주 중이라는 김보라씨(28·여)는 "근처에 대피시설이란 것이 있었느냐"며 되레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민방위 대피시설은 적의 침투·도발·위협 등의 비상사태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시설이다. 지하 주차장, 전철역 지하층 등 지하 시설물이 민방위기본법에 따라 대피시설로 지정되고 관리된다. 대피시설은 급수·소방·방호 물자 등이 갖춰져 있어 유사시 비상 상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행정안전부 공공데이터 포털에 따르면 서울시에만 2919곳의 민방위 대피시설이 운영돼 비상시 3522만1041명을 수용할 수 있다. 행안부는 '비상시국민행동요령'의 내용이 담긴 책자나 안내판을 배포하는 등 지자체를 통해 대피시설 위치를 국민에게 알리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민방위 상황이 발생하면 가까운 지하 시설이나 유리창이 없는 콘크리트 건물 같은 대피시설로 대피하라고 지자체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며 "평상시에 대피시설 위치를 숙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골든 타임'으로 불리는 5분 이내에 시민들이 대피시설로 향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평소 대피시설 위치를 숙지하지 않은 시민이 많아 유사시 신속하게 대피시설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행안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네이버지도' '티맵' 등 업체와 협업해 지도 앱에 대피시설 위치를 검색·조회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막상 비상 상황이 닥치면 지도 앱을 켠 뒤 '대피시설'을 검색하긴 쉽지 않을뿐더러 노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은 지도 앱에 접근하기도 어렵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대피시설로의 주민 대피가 신속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대피시설 위치 홍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민방위 교육을 할 때 지하 주차장, 지하철 역사 등 대피시설 위치를 교육하는 것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피시설 위치 정보를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노인·장애인 등 안전 취약계층에는 대피시설 홍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