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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진실 어긋난 화해]②“검찰의 상고는 2차 가해…‘국가기관의 의무’ 준수하라”

[감춰진 진실 어긋난 화해]②“검찰의 상고는 2차 가해…‘국가기관의 의무’ 준수하라”

기사승인 2024. 06. 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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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위 결정 후 재심 무죄에 '檢 불복'
유족 "사과는커녕 방해" 진정서 제출
1·2기 '검사파견' 바뀌면서 분위기 전환
"대법원에서 판례 확립해야" 시각도
재심 인권위 진정
'조총련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고(故) 한삼택씨의 유족 한경훈씨(왼쪽 세 번째)를 비롯한 최정규 변호사(왼쪽 다섯 번째) 등이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임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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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전 성실한 공무원 가정을 국가가 다 파괴한 뒤,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에서 2년의 조사를 거쳐 결정을 내리고 열린 재심 끝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여섯 남매가 암흑 속에 살아왔음에도 국가는 사과는커녕 방해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하루 빨리 항소를 취하해 부모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앞에 선 고(故) 한삼택씨의 유족이자 자녀인 한경훈씨는,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 이같이 호소했다.

제주의 중학교 서무주임으로 재직하던 한삼택씨는 1970년 교장의 지시에 따라 재일동포로부터 자금을 기부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해당 재일동포가 북한 계열인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소속임을 알면서 자금을 수수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했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한삼택씨는 1971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학교에서 파면됐다. 고문 후유증은 물론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힌 한삼택씨는 1989년 숨을 거뒀다.

이후 진화위는 지난해 2월 한삼택씨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며 국가의 사과 및 재심 등 적절한 조치를 촉구했다. 이에 법원은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으나 검찰이 항고, 재항고를 거듭했다.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고, 지난 1월 열린 재심에서 한삼택씨는 5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마저도 불복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또 검찰은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지난달 23일 50년 만에 열린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고(故) 최창일씨 사건에 대해서도 상고장을 제출했다. 당시 재판부가 "최씨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다.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죄의 뜻을 밝힌 것과 대조된다.

◇결정·판결 '불복'…'자체 매뉴얼' 미준수하는 '검찰'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주로 "진화위 결정은 청구인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근거로 판단한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당시 수사기관에선 불법 구금에 따른 진술이 이뤄졌지만, 법정에선 본인 뜻대로 자백 취지 진술을 했다"는 주장을 불복 사유로 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검찰이 과거사정리법 32조의2가 정한 국가의 '진화위 권고사항 이행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아울러 대검찰청이 지난 2019년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과거사 재심사건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재심개시 사건에 대해 문제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불복하지 않기로 했는데, 검찰이 이 자체 규정마저 지키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이 권고·결정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진화위 관계자는 "위원회는 1기 때의 경험 등을 토대로 최선을 다해 조사를 진행하고 권고·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검사 파견' 차이도

법조계 일각에선 지난 2005~2010년 활동한 1기 진화위 때보다, 최근 2기 진화위의 결정에 대해 검찰이 불복하는 사례가 더 많아진 것 같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정권별로 강조하는 국정과제가 다를뿐더러, 구성원의 변화가 영향을 줬다는 것이 이유로 꼽힌다.

진화위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정부의 과거사 정리 추진으로 출범했다. 이후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2기로 부활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기와 2기는 차이는 '검사 파견 유무'에 있다. 1기의 경우 정책보좌관 자리에 부장검사 급이 임명돼 여러 법률 자문을 제공했지만, 2기부터는 민간단체·공무원 출신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1기 때는 아무래도 검찰 측 인사가 있으니 결정에 따르는 느낌이었으나, 지금은 정권도 바뀌고 인사도 바뀌면서 검찰이 비협조적이게 됐다는 인식이 있다"고 전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통상 과거사 사건에 상고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다툴 부분이 있다는 판단에서 상고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검찰의 상고로 이어진 상급심에서 새로운 판례를 확립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제시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화위의 결정에 따라 재심이 열리는 경우, 유사한 사건 내에서 각각의 피해자가 재심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법원에서 확정된 무죄 판결을 받아 판례를 만들면, 다른 사건에서도 적용되는 등 종국적인 해결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검찰도 이런 취지를 살려 2차 가해가 이뤄지지 않도록 변론을 전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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