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징비록 최초 책판 대량 발굴

기사승인 2024. 06. 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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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 제작 통한 책 보급이 징비록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첨부3-2. 징비록 책판 인수 현장
한국국학진흥원이 1647년 무렵 제작된 징비록 책판을 대량 발굴해 인수했다.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은 임진왜란 당시 재상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저술한 '징비록'의 최초 책판 209장을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은 뒤 귀향해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현재 류성룡의 친필 징비록(국보)을 한국국학진흥원이 기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징비록은 조선시대에 여러 판본으로 간행돼 널리 유통됐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져 1695년에는 일본판 '조선징비록'이 발행되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활자본(8권본)과 1647년 무렵 간행된 목판본(16권본), 1894년 옥연정사에서 간행한 목판본(16권본) 등이다.

목활자본은 고서만 일부 남아 있고 1894년 간행 목판본은 고서와 책판이 모두 남아 있다.

이번에 한국국학진흥원이 발굴한 1647년 무렵 제작 책판은 그동안 낱장 몇 장만 전해지면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 시기 책판을 대량 발굴하게 된 것이다.

이 책판은 류성룡의 외손자인 조수익(趙壽益, 1596∼1674)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할 당시 판각 작업을 시작해 제작한 것으로, 문경에서 보관돼 오던 것을 5월 초 청주정씨 한 문중에서 기탁한 것이다.

간행 관련 기록은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지은 '운양잡록(雲陽雜錄)'에 수록돼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1894년 옥연정사 간행 책판(16권본)과 비교하면 두 책판의 권차는 동일하지만 형태가 확연히 다르다.

17세기 중반 책판의 형태적 특징, 마구리 부분의 판각법 등으로 봐 이번 발굴 책판은 1647년 무렵 새긴 것으로 볼수 있고, 당대 판본과 비교해보면 책판의 마모와 계선(界線) 및 획의 탈락, 판심 부분의 어미(魚尾) 모양 등이 일치하는 것을 통해 근거가 더욱 명확하다고 국학진흥원은 설명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임진왜란을 다룬 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징비록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과 함께, 목판 제작을 통한 문헌의 보급도 한몫 했다"며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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