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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진실 어긋난 화해] ①이행 20%, 불복 40%…“피해자 두 번 울리는 국가”

[감춰진 진실 어긋난 화해] ①이행 20%, 불복 40%…“피해자 두 번 울리는 국가”

기사승인 2024. 06. 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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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유명무실' 위원회, '직무유기' 국가
국가폭력 피해자 위해 '진화위' 설립
81건 권고에 16건 이행…'불이익' 없어
'진실규명 결정'도 항소…'소멸시효' 주장
"구체적 지시, '원스톱' 피해자 지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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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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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해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국가)가 '소멸시효가 지나 소송 제기가 위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것이라 허용될 수 없다"

'호통 판사'로도 알려진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가 지난해 9월 '경북 코발트광산 사건' 관련 국가배상소송에서 희생자 A씨의 손을 들어주며 이같이 판시했다. 해당 사건은 1949년 국가가 좌익 전향자들을 관리·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국민보도연맹'에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평범한 농민들을 가입시킨 뒤, 이듬해 경찰 등이 폐쇄된 코발트광산에 끌고 가 사살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는 이 사건 희생자가 1800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 역시 경북 청도 지역에서 사건에 휘말려 희생됐다. 진화위는 지난 2022년 A씨가 희생자가 맞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A씨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천 부장판사는 "국가의 불법행위로부터 60년 이상 세월이 흐르는 동안 특별한 조치 없이 방치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가 총 16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지난달 29일 이어진 2심에서 결국 피해자의 배상 금액은 낮아졌다.

국가가 제정한 '과거사정리법'에 근거해 설립된 진화위의 권고·결정에도, 아이러니하게 국가가 따르지 않아 희생자들이 재차 눈물을 흘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진화위가 이름뿐인 단체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국가가 더 이상 자신의 의무를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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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기 진화위가 출범 이후 지난해 9월 처음 사건 25개에 대한 81건의 권고사항을 각 관련 국가기관에 전달했지만 이날까지 이행된 권고는 20%인 16건뿐이다.

진화위는 과거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혀 피해자와 유족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독립 국가기관이다. 1기 진화위는 2005~2010년까지 활동했으며, 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화위는 1년 남짓 남은 내년 5월 26일까지 조사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진화위는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때 관련 국가기관에 권고사항을 고지하는데, 말 그대로 '권고'라 국가가 이행할 의무는 없다.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는 "법적으로 이행 기한이 있는 게 아니라서, 계속 관련 기관에 이행을 독려하고 있다"며 "예산이 들어가는 부분은 금방 처리하기 어려우니 의지만 있으면 추진할 수 있는 부분들을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화위 권고와 법원의 판단을 뒤집으려는 시도도 종종 발생해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아시아투데이가 2기 진화위가 출범한 2020년 12월10일부터 지난달까지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 사건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총 80건의 1심 사건 중 77건이 원고 일부승소 혹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가 이 중 40%에 달하는 31건에 불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법원이 정한 위자료 액수가 너무 많다거나, 배상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인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에서 항소했다.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해 온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재판부마다 위자료 책정 액수가 다르기 때문에 항소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 많은 것 같다"며 "'소멸시효 완성'도 주장하는데, 이미 2018년 헌법재판소가 중대 인권침해 사건에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했음에도 주장하는 것은 불법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진화위 권고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지금보다 더욱 구체적인 지시가 있어야 이행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제언했다. 현재 진화위 권고가 '국가의 사과',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 등 추상적일뿐더러 이행 주체 기관도 명확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진화위 권고·결정 이후 피해자가 직접 재심이나 국가배상을 청구해야 하는 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고사항에 국가가 직접 배상하거나 검찰의 직권재심을 넣어 '원스톱'으로 피해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 변호사는 "권고에 구체적인 주체 국가기관, 시한 등이 없다 보니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기다림에 지치다 국가배상소송으로 내몰리게 된다. 국가배상소송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라며 "과거사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위를 만들었다면서, 결정 이후 피해 당사자들이 왜 뭘 더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진화위 결정과 법적인 절차가 하나의 프로세스로 같이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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