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성년부터 적용' 법안 계류
사실적시 명예훼손 문제도 해결 안돼
피해자 처벌 면제 등 보호장치 미비
표씨는 사망 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제 사건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며 추가적인 학교폭력 피해를 막고, 가해자를 엄벌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달라고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표씨가 사망한 지 7개월이 넘게 흐른 지금 관련 법안은 여전히 보완되지 않았다.
22일 국회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표씨 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문제를 해소하고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하는 부작용을 막아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지만 국회는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 처벌 규정이 되는 형법상 폭행·상해죄·강제추행은 각각 5년, 7년, 10년의 공소시효를 지닌다. 이와 같은 시간적 제약으로 학창 시절 발생한 학폭 사건들은 가해자가 30살이 넘으면 처벌이 어려워진다. 표씨 역시 유튜브와 방송 등에서 "초중고교 12년간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로 이어지진 못했다.
표씨는 지난해 3월 이러한 맹점을 고쳐달라며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저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대인관계 형성에 있어 어려움이 있고, 불안·불면·우울증으로 정신과에서 1년 넘게 치료 중"이라며 "학교폭력 공소시효가 사라질 수 있게 (법안을) 발의할 것을 요구한다"고 직접 글을 남기기도 했다. 표씨의 청원은 금세 동의자 수 5만명을 넘기며 '위원회 회부' 상태로 전환하는 등 결실을 맺는 듯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도 관련 문제를 인지하고 법안 개정에 나섰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성년이 되는 시점부터 학교폭력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 계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학교폭력 공소시효 연장이 핵심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단순히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보완을 함께 뒷받침해 보다 촘촘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 측에서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다가 가해자가 성인이 된 후 문제를 제기하는 등 사회적인 혼란이 가중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교사 출신인 문자원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아이들의 경우 어렸을 때 증거 수집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증거가 명확히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소시효를 늘린다고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표씨는 학폭 사실을 공개한 이후 극심한 2차 가해에 시달리는가 하면 가해자 측으로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내용 증명을 받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해자의 명예보단 피해자의 상처와 인권을 보호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며 "범죄사실에 입각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요구한다"고 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2022년 12월 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경우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마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 있다.
국회에 앞서 헌법재판소도 2021년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고 사회 고발과 같은 공적인 활동을 일부 제약하는 측면이 있지만 개인의 명예와 인격 보호가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현재 이 조항은 세 번째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로 국제 인권 기준에도 맞지 않고 폐지를 찬성하는 사회적 상황이나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학교폭력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이 악용하고 있는 법 중 하나"라며 "어떤 사람에게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부분이면 온라인에 올라온 해당 글을 블라인드 처리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형사적인 잣대를 들이대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