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금서, 사업부 요청에 해당 지사장 직위 해제
법원에 효력 중지 가처분 소송 냈지만 의견조율 안돼
지난 2022년 5월, 김형진(가명)씨는 한화생명의 자회사 GA(법인보험대리점)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이하 '한금서')로 이직해 지사장으로 일했다. 당시 김 씨는 한금서와 사업부 운영계약서를 체결했지만, 사업부장 박기웅(가명)씨와는 '구두계약'만 맺었다. 한금서 조직은 한금서→사업부→지사→FP로 설계돼 있다. 김 씨와 박 씨는 1년간 계약서 없는 상황을 유지해오다 2023년 6월. 김 씨는 사업부장에게 '계약서가 없으니 계약 무효'라고 주장하고, 사업부장 박 씨는 '사업부-FP(보험설계사)-본부'는 이해 당사자이므로 계약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두 사람 간 다툼이 시작됐다. 조직 최상위에 있는 한금서는 사업부와 지사 간 계약에 대해선 관여할 수 없다며 뒷짐지고 있는 입장이다. 하루 아침에 FP 신분이 된 김 씨는, 지사장으로 받아야 할 수수료 등을 받지 못한 채 법원과 금융당국에 각각 가처분 소송과 민원을 제기한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한화생명과 GA 한금서의 구조에서 시작한다. 지난 2021년 4월, 한화생명은 대형 생명보험사 중에서 최초로 제조와 판매를 분리시켰다. 상품 제조는 한화생명이, 판매는 한금서가 하도록 했다. 표면적으로는 영업효율화를 위해서라지만, 사실상 보험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 처리를 한화생명이 아닌 한금서에 넘기기 위해서였다. 보험업 특성상 설계사는 물론 고객 민원에 시달릴 수 밖에 없으니 한금서를 통해 영업과 민원까지 담당하도록 하고 한화생명은 상품만 만들어 책임지지 않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실제 한화생명은 한금서를 만든 이후 설계사를 대거 모집하며 영업 드라이브를 걸었다.
한금서는 현재 국내 최대 GA(법인보험대리점) 규모로 설계사 조직만 3만명에 달한다. 2021년만해도 168억원 순손실을 냈는데 지난해 3분기에는 누적 630억원의 순익을 내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급성장한 규모에 비해 GA와 사업부, 지사 간 맺는 '불공정 계약'이 있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금서 소속 지사장 김 씨는 지난 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한금서를 상대로 '계약 해지 통보 효력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지난 1일에는 금융감독원에 사업부장 박 씨가 자신의 지사장 직책을 변경해 권한을 빼앗았다는 내용의 민원도 제기한 상황이다.
계약서를 이유로 두 사람 간 공방이 시작된 이후, 박 씨는 계약서 미작성을 이유로 김 씨가 운영하는 지사의 수금인 변경 신청을 반려했다. 해당 지사 산하 FP들이 계약한 보험 건에 대한 수수료를 김 씨가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인 부분은 양측이 작성한 계약서다. 박 씨는 해촉자, 즉 계약 해지된 FP의 보험 유지 수수료를 사업부의 승인 하에 지사 예산에 반영시키겠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해 김 씨에게 보냈다. 해촉 수수료를 지사장에게 주지 않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에다가 박 씨는 지사장에 대한 해지조항 5가지를 추가해 계약서를 보냈다. 5가지 조항은 △사업장이나 외부에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불신·불안을 조장하거나 신뢰를 저해하는 부정 행위 △사업부에 대한 명예 훼손 및 신뢰 추락으로 업무 방해 △사업부 승인없이 타 지사장이나 본부장 등 관리자와 접촉하고 부정적 선동으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등이다.
박 씨가 김 씨에게만 해지조항을 추가해 계약서를 보낸 배경엔 김 씨가 계약서 미작성 등에 대한 내용을 사내 인트라넷에 올려서다. 이후 글은 내려갔지만 박 씨는 이를 빌미삼아 김 씨에게 해지조항 추가 및 해촉 수수료를 줄 수 없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해 계약서를 요구한 상황이었다.
김 씨는 해당 계약서가 부당하다며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계약서를 작성해 박 씨에게 계약 요구를 했으나 '수용 불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15일, 박 씨는 김 씨에게 '(사업부가 작성한) 6일 안에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직위 해지 하겠다'는 내용 증명을 보냈고, 김 씨는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 올해 2월 1일, 김 씨의 직책은 지사장에서 FP로 변경됐다. 사실상 지사장 직위 해제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본사인 한금서에 '표준계약서'를 요청했다. 사업부장 마음대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말고 본사 차원에서 표준계약서를 작성해 '중재'를 해달라는 얘기였다. 한금서는 지난 7일 김 씨에게 표준계약서를 전달했는데, 앞서 박 씨가 작성한 해촉자 수수료 내용은 크게 달랐다.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지사 소속 해촉자가 모집한 계약에 따라 발생하는 유지수수료는 해당 FP소속 지사장에게 귀속된다. 김 씨는 한금서 측에 사업부장이 작성한 부당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없다고 의견을 전달했지만 현재까지 의견 조율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금서는 사업부와만 계약을 맺을 뿐, 지사와는 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사의 관리·감독 책임은 사업부에 있고 계약서 문제에 따른 책임 주체 또한 한금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 한금서는 크게 두 개의 조직으로 나뉜다. 당초 한화생명 소속 설계사들이 있던 '직영'조직과 13개의 사업부에, 사업부장이 대표격으로 지사를 유치해 운영하는 '독립'조직이다. 직영 조직은 한금서와 본사 '표준계약서'로 의무 계약을 맺는 반면, 독립 조직들은 사업부와 지사간 '자체 계약'을 자율적으로 맺고 있다. 최근 지사장 김 씨가 박 씨에게 불공정 계약이라는 이유로 가처분을 낸 결정적인 배경이다.
한금서 관계자는 "사업부와 지사 간의 계약 문제"라면서 "지사와 한금서는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므로, 두 사람간 계약과 다툼에 관여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 한금서는 사업부와만 직접 계약을 맺어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박 씨가 요청한 지사장 직위 해제 건을 직책 변경으로 해줬다.
하지만 김 씨의 변호사 측은 한금서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앞서 김 씨와 한금서가 작성한 '사업부 운영 계약'에 따르면 '한금서와 사업부 및 지사장들은 본 사업부 운영 계약을 체결한다'는 문구가 있어서다. 김 씨는 "일하는 설계사나 지사장들은 물론 고객들도 지사 이름이 아닌 한금서 이름을 보고 오는데, 정작 최상위에 있는 한금서는 사업부와 지사간 불공정 계약에 대해서 뒷짐만 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김 씨가 한금서를 대상으로 법원에 낸 '계약해지 통보 효력중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다음달 6일 심문기일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