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의료분쟁 기획 上] 10년간 피해자 승소는 단 1.6%…‘기울어진 운동장’ 의료소송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11110010006125

글자크기

닫기

김현구 기자

승인 : 2021. 11. 11. 06:00

의료소송 9645건 중 원고승 단 86건…일부승소도 배상액 미미
법조계 "최근 책임제한 엄격히 적용하는 추세"…'기준 없다'는 지적 여전
피해자, 증거수집 곤혹…의사 책임 덜 묻는 관행에 대한 비판도 나와
Print
의료소송 사건은 피해자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근본적으로 의료소송은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피해자의 정보 접근권이 일부 늘어나는 추세지만 기울기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에게 가혹한 의료소송의 법·제도 문제점을 총 3편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아시아투데이 김현구 기자 = 지난 8월 말 국내 의료 분쟁사(史)에 주목할 만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의료계 반발이 거셌던 수술실 내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통상 민사 의료소송 사건은 피해를 증명하는 정보를 병원과 의사가 틀어쥐고 있다. 그만큼 피해자가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의료분야 최대 논쟁거리였던 수술실 CCTV 의무화가 법제화되면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의료소송도 차츰 피해자 중심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일부만 복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 관련 법·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명백한 책임 규명이 됐음에도 병원과 의사 측에 책임을 덜 묻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손해의 분담과 책임의 독박 사이 ‘책임제한’

10일 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1~2020년 의료과오로 인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 1심 사건은 총 9645건이다. 화해·조정 등을 제외하고 판결이 난 사건은 5289건이며, 원고일부승은 2704건으로 약 28.0%이다. 판결이 난 사건 중 명백한 의료사고가 인정돼 원고승이 나온 사건은 단 86건으로, 약 1.6%에 불과하다.
원고일부승에도 허점이 있다. ‘일부승’으로 마치 피해자인 원고가 재판에서 이긴 것 같지만, 사실은 피해자가 단 10원만 받아도 일부승으로 통계가 잡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피해자가 적당한 손해배상을 받았는지, 터무니없이 낮은 비율의 배상만 받았는지 파악이 불분명하다는 의미다.

원고일부승이 많은 이유는 ‘책임제한’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책임제한이란 피해자의 과실이나 이익이 없어도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법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법원이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일부를 감액해 배상하도록 하는 판례상의 법리다. 보통의 손해배상소송은 책임제한이 적용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의료과오 소송에서의 책임제한 적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책임제한이 사라질 경우 병원, 의사 측에서 다소 위험한 치료나 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책임제한 적용이 자의적으로 사용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이용환 의료전문 변호사는 “환자의 기왕증(과거 질병)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의사들이 소위 ‘독박’을 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다만 최근 하급심 법원에서는 책임제한 적용을 하지 않거나 엄격하게 적용하는 추세고, 하급심보다 보수적인 고등법원의 경우 책임제한 비율을 더 폭넓게 적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책임제한 적용에 기준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신현호 의료전문 변호사는 “주야간 중 의료사고가 발생한 시점, 관련 진료나 수술에 대한 전문 병원인지 아닌지 등에 따라 책임제한 적용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 기준이 없다”며 “재판부가 책임제한을 객관적 기준 없이 해석해 비율을 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료소송’…정보의 불균형

의료소송과 같이 높은 전문성을 요하는 경우 피해자는 자신이 입은 피해가 의료사고인지 판단하는 것부터 어떤 피해를 봤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피해복구를 해야 하는지 등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결국 초동단계에서부터 증거 수집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민사소송은 피해자인 원고가 피해를 직접 입증해야 하므로 피해자가 철저히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해자가 소송에 필요한 증거와 절차 등을 알게 된 이후도 문제다. 진료기록부나 CCTV 등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병원 측의 진료기록부 조작은 흔한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의사 출신 정이원 변호사는 “의료법상 진료기록부의 수정본을 모두 저장하라고 돼 있지만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저장해야 하는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는 나와 있지 않아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고, CCTV 설치법도 마찬가지”라며 “게다가 병원 측에서 증거 제출 등에 비협조적으로 나왔을 때도 이에 대한 불이익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최근 병원이 증거기록 위조로 형사 처벌을 받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소견을 낸 사건에 법원이 ‘적절한 조치를 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며 기각을 한 사건이 있다”며 “이처럼 진료기록 조작이 명백한 사건에도 의사들에 책임을 묻는 일이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현구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