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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건복지부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21∼2030년)을 발표하면서 장기적으로 담배·주류 가격 인상 계획을 밝혔다. 이 경우 10년 이내 담뱃값은 8100원 수준, 소주나 맥주 등 주류 값은 1660원 선이 될 전망이다. 술과 담배에 세금을 매겨 소비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국민건강증진기금 부담금 수입 규모를 늘리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들에게 세금을 인상하는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크다. 술·담배는 저소득층을 비롯한 서민들의 대표적인 기호품인데 정부가 소득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간접세를 늘린다는 것은 그만큼 서민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죄악세를 통한 세금증대에 치중할 게 아니라 현행 세율체계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는 28일 “세금을 더 걷는 것보다 재정을 합리적으로 지출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무차별적 현금 살포로 부족해진 재정을 간접세 인상 등으로 채우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면서 “선심성 코로나 지원금이 부메랑이 돼 국민들에게 세금으로 돌아온 꼴”이라고 했다. 또 “담배세는 저소득층이 더 높은 세 부담을 지는 역진세이고, 주류세는 코로나로 힘든 자영업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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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A씨는 “정부가 국민건강을 얘기하려면 아예 술·담배를 팔지 말아야 한다”면서 “세금 더 걷고 싶으니까 서민들 주머니 털겠다는 말 아니냐. 술·담배 하는 사람들을 마치 큰 죄를 짓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도 평택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B씨는 “지금이야 술·담배 두 품목이지만 몇 년 후에는 똑같은 이유로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가격도 올릴 게 뻔하다”면서 “부동산도 죄악세로 만드는데 이러다가 치킨세도 걷겠다고 할지 모르겠다”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담뱃값 인상 소식이 알려지자 슈퍼마켓 곳곳에서 담배 사재기 조짐도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하남에 거주하는 C씨는 “정부가 야금야금 담뱃값 인상을 해온 탓에 내성이 생겼다”면서 “본격적으로 사재기하면 제재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군데를 돌면서 조금씩 쟁여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C씨는 “코로나로 살기 힘들어서 담배로 시름을 날렸는데 이제 그런 낙도 없겠다”고 반발했다. C씨는 “나야 아직 30대니까 일할 기회라도 있지만 힘들게 사시는 노인 분들은 꽁초 줍고 다니셔야 할 판”이라면서 “단 돈 몇 천원에 울고 웃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너무 가혹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과 주류 부담금으로 과도한 흡연·음주를 저지하겠다는 이유를 댔지만 이렇게 올린 세금이 실제로 국민건강 복지에 사용이 안 된다는 비판도 크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담뱃값 대폭 인상 후 정부가 투입한 건강증진사업의 비율은 28% 정도에 불과했다. 예산처는 “국민 건강증진과 흡연율 감소를 위해 담뱃값을 인상했음을 고려할 때 정부의 금연정책과 부합하는 예산 편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정부 당시 “담뱃값 인상은 있을 수 없는 횡포”라고 한 과거 발언도 회자돼 반발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서민들은 코로나19로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담뱃값과 술값마저 올린다고 하니 참 눈치도 없고 도리도 없는 정부”라고 각을 세웠다. 나 전 의원은 “건강과 보건은 물론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가격 인상이 맞을지도 모른다”면서도 “지금이 그것을 논의할 때인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