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아베 '혐한정치' 경제 어렵게 할 것"
이원덕 "국민간 혐오, 수습 쉽지 않아"
진창수 "'갈등 기류' 국내 정치 활용"
양기호 "상대 존중으로 갈등 관리"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는 갈등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8·15는 한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한국의 광복절이며, 일본에는 태평양전쟁 ‘패전일’이다. 한·일 관계 전문가 4명으로부터 현재 두 나라 관계를 진단하고 해법과 전망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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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대양휴머니티칼리지·독도연구소장)는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일본이 한국과 협력에 나서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내수경제가 얼어붙은 일본이 한국과 경제 전쟁까지 벌이면 그 타격은 고스란히 일본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사카 교수는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하며 한국과 일본이 코로나19 대응이란 공동의 과제 앞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정권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한 대응보다 자국의 경제 상황, 코로나19 확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며 “실제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민심을 잃은 아베 총리의 임기 연장을 일본 유권자의 약 70%가 반대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이 자국 상황을 봉합하지 않고 한국에 대한 비자 발급 기준 강화와 관세 인상 등의 보복 조치를 가하면 내수 경제마저 굉장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사카 교수는 두 나라가 인도적 협력으로 우호적 관계 구축에 성공하면, 다른 주요 외교적 사안별 협력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호사카 교수는 “두 나라가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위안부 합의 문제 등을 직접 다룰 경우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며 “코로나19 협력을 통해 감정적 앙금을 우선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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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덕 국민대 교수(일본학과)는 한·일 갈등의 핵심으로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인식차를 꼽으며 이같이 제언했다. 참여정부 당시 강제징용·징병 피해자 보상을 위한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던 이 교수는 한·일 협정 관련 국내 최고 권위자다. 이 교수는 한·일 갈등의 전선이 정치·사회·경제로 확대된 ‘뉴노멀(새로운 설정)’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며 “두 나라 국민 간 혐오 감정이 고조돼 수습이 어려운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일 관계를 복구하기 위해선 두 나라가 전략적 가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정상 간 협의를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한·일 관계는 단순한 양자관계를 넘어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라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과정에서 일본을 ‘패싱’ 하기보다 일본 변수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만나야 한다”며 “사사건건 마찰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이유는 두 나라의 정치 리더가 수수방관하거나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만약 단기적으로 두 정상이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한·일 양국의 정권 교체가 관계 복원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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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전 세종연구소장은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더 큰 태풍을 앞둔 전야’로 규정하며 이 같이 주문했다.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연장 여부 등 산적한 난제 속에 추가 보복 조치까지 더해지면 두 나라 모두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진 전 소장은 “한·일 관계가 태풍이 오기 전 ‘정적’의 상태와 같다”며 “한·일 관계 전망도 어둡다. 두 나라 모두 (정치적 대립을 할수록) 지지율이 높아진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 전 소장도 “문재인정부와 아베정권이 바뀌는 시점은 돼야 한·일이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생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진 전 소장은 한·일 갈등 관계의 해법으로 △두 나라 감정 해소 △전략적 가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 정립 △당국의 강력한 문제 해결 의지 수립 등을 제시했다.
진 전 소장은 “미·중 대립 속에 한국과 일본이 (경제 분야 등에서)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전략적 가치를 계산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일본의 수출 규제 동결,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유예 등을 통해 현상을 동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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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전문가로 손꼽히는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어일본학과)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이 같은 제언을 내놨다. 양 교수는 국내 정치에 압도된 한·일 관계에서 벗어나 외교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교수는 “한반도 평화체제와 대북정책, 위안부 합의, 강제징용 피해자보상 문제 등의 해법과 관련해 한·일 간의 입장차가 두드러지고 있어 쉽게 풀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강제징용 해법부터 도출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우리 법원의 판결에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두 나라 국민의 반감이 증폭되지 않도록 대국적인 차원에서 오는 11월 한·중·일, 한·일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외교 당국 간 소통 원활화와 위기관리 능력 제고 등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 교수는 “정치와 언론, 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채널에서 소통을 하고 이를 통해 오해와 편견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진정성을 갖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하면 갈등은 관리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