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20일 검거된 직파 간첩이 남한 사회의 혼란 조장과 각종 기밀 수집 등 포괄적 임무가 아닌 단지 황장엽 전 비서를 암살할 목적으로 밀파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황 전 비서에 대한 신변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종전의 위협들이 남한 내 고정간첩이나 친북단체들에 의한 것으로 추정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북한은 왜 현 시점을 황 전 비서에 대한 암살 시점으로 택했을까.
우선 황 전 비서가 최근 본격적 궤도에 오른 북한의 원활한 ‘3대 권력 세습’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는 황 전 비서의 활발한 북한 체제 비판 활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 받고 있는 3남 김정은에 대한 권력 승계 작업에 ‘눈엣가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에 오른 뒤 ‘선군사상’을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제시하고 김정은을 ‘선군혁명의 수뇌부’로 지칭하는 등 ‘선군’ 이데올로기 전파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의 개정 헌법 전문에서 보듯 선군사상은 여전히 주체사상의 계승자 위치에 머물러 있다. 황 전 비서가 북한 통치의 중심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는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닦았다는 점에서 그의 체제 비판은 김정은에 대한 정당성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망명 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비운의 망명객’으로 불리기도 했던 황 전 비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을 방문한 그는 “(김정은) 그 녀석 만난 일도 없고, 그깟 녀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거침없는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다.
군부를 비롯한 북한 내 강경파의 과잉 충성경쟁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같은 시각도 ‘권력승계’라는 북한 내부사정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안정적 후계체제 구축 달성과 연관돼 있다. 북한이 황 전 비서가 망명한지 13년이 흐른 시점에서 살해하려 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가 불완전한 가운데 후계자로 내정된 지 1년이 넘은 김정은에 대한 ‘업적쌓기’ 차원에서 전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북한 공작원 출신 한 탈북자는 “1990년대에도 공작 부서의 일부 충성분자들이 김 위원장에게 황 전 비서 암살 계획을 보고했지만 김 위원장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들었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김정은 업적 쌓기 차원에서 반역자를 처단해 대내외적으로 과시할 목적으로 군부에서 기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