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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
1952년, 컴패션은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설립됐다. 아이티는 컴패션이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눈을 돌린 중미의 가난한 나라였다.
그리고 1993년, 한국은 더 이상 컴패션의 도움을 받지 않는 나라가 됐다.
이어 10년 뒤 컴패션의 열 번째 후원국으로서 아이티를 포함한 전 세계 26개 나라를 돕기 시작했다.
41년 동안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컴패션 11개 후원국 가운데 4번째로 도움을 많이 주는 나라가 됐다. 이것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가난한 나라의 모델이 되는 이유다.
반면, 1968년부터 컴패션의 도움을 받아온 아이티는 여전히 가난한 나라다.
40년이 넘도록 해외원조에 의존하던 그들에게 이번엔 그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쳤다. 한국처럼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나라가 되길 바랐지만, 기약이 없게 됐다.
지난해 한국컴패션후원자 30여명이 아이티를 방문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언제가 제일 힘드냐” 물으니 “지금이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지금, 그 ‘지금’보다 더 힘들 내일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은 어린이들이다. 컴패션에서는 아이티 내 230개 어린이센터를 통해 6만 5천여명의 어린이를 돌봐왔다.
이 가운데 2000여명이 한국후원자들과 1대1 결연어린이들이다.
10개월 전 만난 컴패션어린이센터의 어린이들은 내전과 허리케인 등에 수시로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파일럿, 선생님, 우주비행사.. 저마다의 꿈을 그리고 있었다.
사진이며, 편지며 후원자로 부터 받은 사랑의 증거를 자랑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전해오는 상황보고에 따르면, 복구를 시작한 어린이센터로 대학생, 청년들이 속속 몰려든다고 한다.
컴패션어린이센터를 졸업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스스로 나서 일손을 돕고, 불안한 치안 가운데 어린이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받은 사랑을 돌려줄 줄 아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은행원, 조용진(48세)은 한국이 수혜국이던 시절 컴패션을 통해 캐나다 후원자로부터 학비지원을 받았다.
그는 경제적 지원보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현재, 또 다른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
사랑은 돌고 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은 사랑을 흘려보낼 줄 안다.
뉴스 화면의 아이티 모습에서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가 연상된다. 희망이란 단어조차 어울리지 않던 그곳에 컴패션은 사람을 통해 사랑을 심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이란 결실을 거뒀다.
이제 곧 세계의 이목이 더 이상 아이티를 주목하지 않고 국내 언론의 보도 열기가 시들해질 무렵, 그래도 남는 것은 사람일 것이다.
특별히 아이티 어린이 한명 한명에게 용기를 전하고 응원하는 타국의 언니, 오빠, 또는 아저씨, 아줌마들… 바로 그 속에 희망이 있다.
내 자식처럼 애태우며 기도하는 마음들이 닿는 자리에 사랑이 밀알 되어 열매 맺히기 때문이다.
한국컴패션은 후원자들과 함께 절망 가운데 있는 아이티에 끝까지 사랑을 심을 것이다.
이름조차 생소하던 아이티 어린이를 후원하겠다고 결연 신청을 해온 100여명의 후원자들도 이미 가슴으로 아이들을 품었다.
1대1결연을 통해 한 어린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은 아이티에게 미래를 선물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