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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 이혜영의, 이혜영을 위한, 이혜영에 의한 ‘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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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5. 04. 30. 09:32

자신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60대 여성 킬러 역으로 혼신의 열연 펼쳐
구병모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3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파과
30일 개봉한 새 영화 '파과'의 주인공인 '조각'(이혜영)은 각종 도검류는 물론이고 총기까지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60대 여성 킬러다./제공=뉴(NEW)
방역 업체로 위장한 살인 청부 회사에서 '대모님'으로 추앙받으며 40년 넘게 최고의 킬러로 활약해 온 '조각'(이혜영)은 나이 들수록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 않은 탓에 점차 퇴물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전광석화같은 실력을 인정받아 회사의 새로운 일원이 된 '투우'(김성철)가 '조각'의 주변을 맴도는 가운데, 이 같은 현실에 서글퍼하던 '조각'은 업무 도중 다친 자신을 치료해 준 수의사 '강선생'(연우진)과 그의 딸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게 된다. '투우'는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챈 사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고 '강선생' 부녀를 보호하려 애쓰는 '조각'의 모습에 이유 모를 분노를 쏟아내며 대결을 준비한다.

온갖 킬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할리우드 액션물에서도 은발의 60대 여성 살인 청부업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뿐더러, 그 같은 캐릭터를 실제로도 비슷한 나이대의 여배우가 연기한 사례 또한 거의 없다. 흥행 혹은 캐스팅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잘 시도되지 않았는데, 최근 전례를 굳이 꼽는다면 2010년에 개봉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코믹 액션물 '레드'에서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기관총을 쏴 대던 당시 65세의 헬렌 미렌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그러나 조연급에 '구강 액션'에 치중하는 미렌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정통 액션 연기를 시도했다고 말하기는 다소 어려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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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파과'의 주인공 '조각'(이혜영·왼쪽)은 자신을 구해준 수의사 '강원장'(연우진)을 조직의 규칙에 따라 제거하려다 살려준다./제공=뉴(NEW)
30일 개봉한 '파과'가 완성도의 높고 낮음을 따지기에 앞서 무조건 박수부터 받아야 하는 이유는 1962년생으로 올해 나이 63세인 이혜영이 2002년작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무려 23년 만에 다시 도전한 사생결단식 액션 연기에 있다. 물론 난이도 높은 액션 장면에서는 전문 대역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특유의 서늘하면서도 처연한 눈빛과 카리스마 넘치는 발성, 기민하나 때로는 쇠약해 보이는 몸놀림으로 극 전체의 강약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그의 모습에 호흡이 좌우될 정도다.

연출자인 민규동 감독은 이혜영의 열연과 구병모가 2013년 출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다층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쓴다. '60대 여성 킬러의 뒤늦은 자기 성찰과 주변 돌아보기'란 표면적인 주제 말고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기 일쑤인 노년층의 고독과 극한으로 치닫는 애증의 말로까지 골고루 담아내려 노력한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선후배 킬러로 일합을 겨루는 '어쌔신', 실력 없는 로열 패밀리가 득세하고 실적만이 중시되는 일반 조직으로 살인 청부 회사를 묘사한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에서 일부 빌려온 듯한 분위기와 설정 등이 약간의 기시감을 제공하지만 비교적 준수한 솜씨로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인지 지난 2월 열린 제7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제43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와 제15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 차례로 초청받는 등 세계 무대에서 일찌감치 호평을 이끌어냈다. 15세 이상 관람가.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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