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정부 투자보다 민간투자 활성화·규제개혁 중요”
이준석·안철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 없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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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업계 및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AI 투자 100조원 시대 개막 △공공데이터 민간개방 △글로벌 협력을 통한 공용 AI 기술 개발 △전국민 무료 한국형 AI 추진 등을 골자로 하는 AI 관련 공약을 1호 공약으로 내놓았다. 당내 경선 경쟁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AI 분야에 향후 5년 간 민·관 공동으로 총 100조원 규모 투자를 이뤄내 '한국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재원은 증세 등까지 염두에 두고 적극적인 국가 재정 투자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AI 자본 강국' 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민의힘에서는 한동훈 전 대표가 AI 인프라·생태계 구축에 2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한 전 대표는 또 AI 등 첨단산업 분야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규제제로특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밖에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교육 분야 AI 활용, 안철수 의원은 AI 세계 3강(G3) 도약 등의 공약을 내놨다.
유력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AI 관련 공약들을 내놓으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이것이 AI 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 증대와 국가 차원의 지원 확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각 후보들이 높은 목표와 예산 규모 등만을 제시한 채 구체적인 실행 방안 등은 아직 언급하지 않으면서, 공약들의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이 남는 상황이다. 또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높은 투자금액을 제시할 뿐 실제로 산업에 필요한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AI 분야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숙고 없이 강한 인상을 남길 만한 금액이나 단어를 앞세운 '키워드 장사'에 나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쟁 상대가 100조 투자를 이야기하자 200조 투자를 이야기하는 식의 공약은 평가할 만한 것이 안 된다"며 "산업이나 현실에 대한 이해가 낮은 상태에서 숫자로만 이목을 끌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중심의 퍼주기 형태 정책은 포퓰리즘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정책을 내놓고 금액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핵심을 이야기해야 한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AI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나쁜 제도는 없애는 것과 인재 양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무상 AI 공약은 세금을 들여 품질이 낮은 AI를 제공하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가가 주도한 사업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 사업에 참여한 일부 기업들만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또 "국제 협력으로 공용 AI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서로 니즈가 맞는 대상끼리 협업을 할 것"이라며 "현실성이 없으면 결국 나랏돈을 쓰게 돼 있는데, 미국이 정부에서 돈을 대서 AI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중국식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AI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가진 대선 예비후보들도 경쟁 주자들의 공약을 비판하고 나섰다. IT 기업 '안랩(Ahnlab)'의 창업자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전 대표의 공약에 대해 "과연 AI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제발 모르면 좀 가만히 계시라. 무지하면 공공, 무료, 무조건투자만 외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선거 후보는 "AI의 기본은 민간에서 투자가 촉진되는 것"이라며 "이재명 전 대표가 이야기한 무상 AI 정책은 본인이 브랜드한 '무상 시리즈'와 AI를 엮은 참 멍청한 발상이고, 더 한심한 것은 100조원 (투자)하겠다니까 200조원으로 받아 올린 사람"이라고 이 전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 후보는 "경마식으로 공약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의 대책으로는 중국과의 과학 기술 경쟁을 이길 수가 없다"며 "전혀 AI를 진흥하기 위한 대책도 아닐 뿐더러 고려가 많지 않았던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실제로는 AI에 학습되는 데이터들을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합의가 필요하고 이런 것들을 정치가 풀어내야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데, 이런 것은 하지 않고 그냥 무상이니, 돈을 주겠다느니 이런 것들로 가는 것 자체가 방향 잘못 잡은 것"이라고 했다.
이경전 교수는 "AI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마중물이 되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정부는 규제 혁파 등 AI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율을 중시하면서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게 하고 제도 개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