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 의무화 시 기업들 경영권 방어 수단 사라져
경영권 분쟁 현실화되면 기업 성장에도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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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업계에선 이재명식(式) 밸류업이 현실화되면, 기업 경영권 침탈을 목적으로 한 사모펀드(PEF)들이 활개를 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PBR이 낮은 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기업들 입장에선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시장 정상화를 위해 PBR이 낮은 기업들이 청산돼야 한다는 이 예비후보의 주장을 두고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PBR은 기업의 주가가 주당순자산가치 대비 얼마나 높고 낮은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예비후보는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활성화 간담회에서 "PBR이 0.1배 혹은 0.2배 정도 되는 기업들은 적대적 M&A를 통해 청산할 필요가 있다"며 "시장의 물을 흐리는 기업들은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PBR이 0.1배라는 건 기업의 주가가 순자산가치(NAV)보다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인데, PBR은 통상 자본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주주환원에 인색할 경우 낮게 책정된다.
즉 이들 기업을 청산해 그간 억눌려 있던 국내 주식시장을 끌어올리겠다는 게 이 예비후보의 구상이다. PBR이 낮은 기업들을 M&A 등의 방법으로 증시에서 퇴출시킨다면 코스피 지수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업계에선 적대적 M&A로 경영권 침탈을 노리는 PEF들의 유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PBR이 낮다고 해서 무조건 기업가치가 낮다고 보기도 어렵다. 유통업 특성상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는 이마트(0.21배), 롯데하이마트(0.13배) 등의 대기업도 있어서다.
특히 이 예비후보는 자사주 원칙적 소각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이 자사주를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사용해왔다는 측면에서, 소각이 의무화될 시 경영권 방어 수단은 사라지게 된다. 그동안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대주주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비판의 시각도 존재했지만, 이를 소각하게 되면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한 PEF들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순 없다.
일례로 2003년 미국 사모펀드 소버린은 SK 지분 14.99%를 매입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바 있는데, 당시 SK는 이를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 등으로 약 1조원의 비용을 사용했다.
박태경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PBR이 낮은 기업들은 사모펀드로부터 항상 적대적 M&A에 노출돼 있고, 이중 우량 기업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며 "또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주가가 오를 순 있겠지만, 방어권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에 경영권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취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책들이 현실화돼 기업들이 경영권 분쟁에 휩쓸릴 경우, 성장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자원을 동원해 지분을 확보해야하므로 불필요한 비용이 대거 발생할 수 있어서다. 나아가 교환사채(EB) 등 자사주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들이 막혀 기업들의 재무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자사주를 활용한 M&A 등 성장전략을 펴는데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업계에선 PBR이 낮으면 경영권을 무조건 내놓아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분위기다. 시장의 단기적 반응이나 외부요인에 의해서도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단순히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PBR이 낮아졌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기업들을 청산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며 "기업 재무구조 등 여러 방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