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나의 인생' '희망' 서 평화에 대한 신념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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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평화를 강조한 그는 인류가 전쟁을 비롯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두운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수시로 강조했다. 아울러 9·11 테러를 지켜보며 참담함을 느낀 교황은 무슬림을 비롯한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은 최근 번역 출간된 자서전 '나의 인생'(윌북)과 '희망'(가톨릭출판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이던 1976년 3월 24일 호르헤 라파일 비델라(1925∼2013) 장군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비델라는 아르헨티나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이사벨 페론을 축출하고 대통령 자리에 올라 재야인사를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권은 1983년 12월 변호사 출신 정치인 라울 알폰신(1927∼2009)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7년 넘게 이어졌다.
교황은 자서전에서 이 기간을 암흑 시대로 설명했다. 그는 "군사 정권 기간 수만 명의 사람이 실종자, 곧 데사파레시도스(desaparecidos)가 되었다. 대다수가 젊은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수개월간 고문받고 결국 헬기나 군용기에 태워져 바다에 던져졌다. 때로는 마약을 투약하여 산 채로 바다에 던져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모가 자신과 비슷한 한 소년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에게 자기 신분증을 제공하고 사제복을 입혀 아르헨티나에서 탈출하게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교황은 자신도 "독재 시절 중상모략의 희생자"였다며 군사정권 시절에 벌어진 범죄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던 2010년 무렵에도 누명을 씌우려는 이들이 있었지만 "재판관들은 내가 범죄와 연루된 증거가 없으며 무죄라고 선고했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께 많은 기도를 드렸는데, 무엇보다 폭력과 굴욕을 겪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달라고 청했다"며 민주적인 절차를 부정하는 독단적인 정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독재는 악마 같은 것이다. 저는 그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것은 한 세대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생에 걸쳐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가 전쟁의 참혹함에 눈을 일찍부터 뜬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조부가 속한 제78보병 연대에서만 882명이 숨지고, 1573명이 실종됐으며, 3846명이 부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전쟁의 참상을 들려주셨다. 공포와 고통, 두려움, 그리고 사람을 철저히 외롭게 만드는 전쟁의 헛됨을 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황은 "전쟁은 비참함 말고는 아무것도 안겨주지 못하고, 무기는 죽음 외에는 그 무엇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이주민들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도 접했다. 아버지 마리오의 공장 동료나 고객 중에 유대인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 가정과 교류하면서 유럽에서 벌어지는 유대인 박해에 관해서도 들은 것이다.
특히 홀로코스트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남긴 충격은 2016년 7월 유대인 강제 수용소가 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찾아갔을 때의 행동에서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교황은 "신이시여, 당신의 백성들(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소서! 신이시여, 이 많은 잔인함을 용서하소서!"라고 방명록에 적었을 뿐 아무런 연설도 하지 않았다.
교황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며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홀로코스트는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이 공격받을 때, 우리가 너무 늦지 않도록, 언제나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2022년 2월 25일(현지시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주교황청 러시아 대사관을 이례적으로 직접 찾아가 알렉산드르 아브데예프 당시 교황청 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바티칸에서 만나 전쟁을 종식하는 방법을 협의하고, 이후 마테오 주피 추기경을 러시아에 특사로 보내는 등 인도주의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논란에도 교황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택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자서전에서 저개발 국가를 괴롭히는 굶주림과 전쟁 비용을 비교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는 "전쟁은 죽음의 상인들만 살찌우고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는 광기일 뿐이다. 만약 일 년 동안 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면 세계의 기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이고, 단 하루만이라도 군사비 지출을 멈춘다면 3400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