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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의 시대가 막을 내린 건 불과 20여년 전이다. 2002~2003년, 온 나라를 뒤흔든 소위 '차떼기' 사건이 결정타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은 대대적인 수사 끝에 정치가 기업에 수십억원의 선거자금을 요구하고, '보험' 차원에서 기업이 이를 줘야했던 관행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물론 이후에도 유사한 일은 계속 있었지만, 과거처럼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이뤄지던 관행은 끊어냈다.
그런데…. 정경유착의 시대가 끝난 뒤 기업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많은 기업인들에게 물어보면 '아니다'는 답이 대부분일 게다. 지난 20여년간 기업은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을 경험해야 했다. 반기업 정서와 규제라는 두 가지 무기를 내세워, 정치는 기업에 복종과 줄서기를 요구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들을 줄세워 투자계획, 고용계획을 발표하는 행태는 지금도 계속된다.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입을 맞추지만 그게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는 또 다른 과제를 기업들에 던져주곤 한다. 바로 '들러리'다. 여야 대선후보들마다 본인의 경제·산업 공약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바쁘디 바쁜' 기업인들을 불러낸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도 다르지 않다. 모 정당의 유력 대선후보는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불러내 청년 일자리와 산업 정책을 논의했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다. 6월 초 대선 투표일까지 정치는 더 많은 기업과 기업인들을 자신들 옆에 세우기에 분주할 것이다.
'돈줄'과 '들러리'.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기업을 대하는 시각이라 한다면 지나친걸까. 600년 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질서가 2025년에도 통용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미국 백악관에는 지금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들어가 있다. 머스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한국 기업들에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그림이다.
앞으로 40여일 후 새 대통령과 새 정권이 들어선다. 기업을 경제·산업 정책의 파트너로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까지는 아니다. 적어도 들러리 세우고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한다. 정치와 기업이 대등한 관계에 설 그날이 언제 올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 때까지 대한민국 기업인들이여, 정치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