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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의 현장정치] 이재명 대표와 헌재의 ‘정치’ ‘사법’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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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4. 08. 18:03

송국건 웹용
객원논설위원
윤석열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에 대해 '야당의 국정 마비 행태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밝혔었다. 탄핵소추안 남발로 인한 고위 공직자의 잇따른 직무 정지, 나라 살림이 어려울 정도의 예산 폭거를 호소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부정선거 의혹이 널리 퍼져 있으니 선관위 시스템을 강제로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그런 건 정치문제이니 정치적 수단으로 풀어야지 군경을 동원한 행위는 위헌'이라는 취지로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다만 그 같은 문제 제기에 동의하는 국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야당을 질책하는 내용을 선고문에 슬쩍 집어넣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 예결특위에서 증액 없이 감액에 대해서만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이 야당의 전횡으로 마비된 국정을 타개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남용이라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을 한 건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대통령 편을 드는 척했다.

그런 기조로 선고문이 흘렀으면 '기각'이었다. 야당, 정확히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유 중 하나로 꼽은 핵심 사안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헌정사상 최초의 감액 예산'을 강조한 건 민주당이 헌정 질서를 심각하게 위배했음을 지적한 걸로 해석이 가능하다. '야당의 전횡' '마비된 국정'을 타개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있으며, 고심 끝에 헌법상 부여된 권한을 이용했다며 계엄을 정당화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통령 파면을 위한 장치들이었던 헌재의 긍정적 평가는 거기까지였다. 이어진 말은 온통 대통령 탓이다. '대통령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라고 했다. 과연 헌재가 그 시점까지의 정국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고 '정치적 해결'을 강조했는지 의문이다. 12·3 계엄 선포 이전에도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구호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고위 공직자들을 실제로 탄핵하면서 무력시위를 곁들였다. 심지어 국민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예산안마저도 정쟁의 수단으로 삼았다.

헌재는 최초의 감액 예산에 대해 예결특위만 통과한 상태였고, 본회의 의결 전이었으므로 현실적으로 중대한 위기를 초래하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했다. 즉 현실화하지 않았기에 계엄 선포 요건인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2025년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시점은 작년 12월 10일이므로 비상계엄 선포 이전인 건 맞다. 그러나 다수당의 힘으로 예결위를 거친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란 점을 정치권은 다 안다. 정치적으로 풀리지 않아서 거기까지 갔고, 결국 비상계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국정을 책임진 처지에선 초유의 감액 예산안이 예결위를 통과한 그 순간을 비상사태 시작으로 여길만하다.

그러나 헌재는 법적 절차만을 따져 본회의 의결을 남겨둔 상태였으므로 현실화하지 않은 위기라고 해석했다. 나아가 민주당의 법률안 무더기 일방 통과도 같은 논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논란이 된 법안들에 대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거나 공표를 보류해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까지의 논란, 정권이 안을 부담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법적 잣대만 들이대어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이런 식의 시각에 따라 '정치적 문제는 평상시처럼 정치로 풀어야 한다. 비상 상황을 만들어 군경을 동원해 해결하려고 한 행위는 위헌이다. 따라서 파면한다'라고 결론지었다. 선고문 초반에 국회가 국정 마비를 초래했다고 대통령이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만 존중' 돼야 한다는 의미였던 셈이다. 사법적으론 존중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윤 전 대통령은 도저히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헌법이 보장한 권한을 행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헌재는 야당의 전횡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의 해결 수단이 사법적으로 잘못됐으므로 파면감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권력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국민 신임을 배반한 대가로 파면됐다. 그런데 헌재도 인정할 정도의 전횡을 부린 야당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처벌은커녕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마치 모든 범죄 혐의에서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행동한다. 헌재의 지적은 그냥 대통령 파면을 위한 장치, 보수 유권자들을 다독이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했던 것인가.

대한민국이 지금의 상태가 된 책임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사법적 제도가 없다. 그렇다면 이 역시 헌재가 강조한 대로 정치영역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에 대해 정치적으로 상을 주거나 처벌하는 수단은 선거뿐이다. 대통령 탄핵 선고문에 담긴 야당의 비정상적인 행태도 사법제도가 처벌할 수 없으므로 여론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결국 조기 대선에서 민심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지금 당장만 보면 이재명 대표가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간주된다. 만일 집권하면 헌재와는 정반대로 정치영역에서 본인의 사법위기를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할 게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불소추 특권 적용 범위를 놓고 국론이 크게 분열되는 상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문제는 다시 헌재로 갈 가능성이 높다.

헌재는 정치 현실을 외면한 채 사법적 잣대로만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재명 대표는 사법적 잘못을 정치영역에서 해결하려고 작전을 짜고 있다. 정치와 사법 영역의 상호작동을 지켜보는 민심이 있다. 그 민심이 조기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마지막 승부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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