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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 LA에서 가장 역동적이자 감동적인 유대인 문화공간인 스커볼 문화센터(1996년 개관)로 향한다. 랍비인 잭 H. 스커볼(1896~1985)의 이름을 딴, 유대인들의 4000년 역사와 그들의 문화, 예술, 이민사를 전시할 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도 열리는 곳이자, 미국의 다문화 예술이 어우러지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공간. 이곳에서 5년간의 준비 끝에 선보인 '마인즈 온' 체험공간 '노아의 방주'는 문을 열자마자, 경이로움 그 자체로 최고의 'must go' 명소로 급부상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재현한 이 재미난 '문화체험 놀이터'는 종교나 인종을 넘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꼭 가볼만한 나들이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성경으로 읽어왔던 내용을 자녀들과 함께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는 기회도 된다. 역시, '유대인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삶과 문화의 가치를 전달하는 전통이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히브리어로 '안식' 또는 '위로'를 의미하는 노아(Noah)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타락한 세상에서 신의 명령을 따른 위대한 예언자로 평가받고 있다. 탈무드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고, 코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은 인류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키며, 그에게 방주(Ark)를 만들라 명령했다. 노아는 그의 가족과 여러 동물을 방주에 태웠는데, 이는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세상은 40일 동안 물로 덮히고, 방주는 '아픔의 산'이라는 뜻의 '아라랏산'에 도착했으며, 노아는 땅에 내려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이후 노아와 그의 자손들이 세상을 다시 채우게 되고, 신은 무지개를 통해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멸하지 않겠노라 약속한다.
아담 이후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자 중요한 신앙적 가르침을 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노아는 이 이야기 속에서 절대자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름으로써 구원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유대인에겐 매우 중요한 신앙적 사건이자 '선택된 민족'이라는 그들의 자부심을 더하게 한다. 이쯤에서 유대교 문화센터에 이 '노아의 방주' 박물관이 세워진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함께 즐기는 히잡 차림 가족들의 모습도 이해할 수 있었다. 종교를 초월한 역사적 관심 때문일 것이다.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두 종교 모두 노아를 신앙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여기므로, 방주와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노아의 방주가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았듯이, 박물관도 신앙을 초월한 대화와 이해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입구를 들어서면, 유명작가들이 온갖 폐품을 갖고 놀라운 창의력으로 만든 300여 동물들을 만난다. '우리가 살려 낸다'는 의미다. 라오스 대나무로 만들어진 아시아 코끼리, 키보드로 만들어진 얼룩말, 양의 머리는 자전거의 안장으로, 악어의 벌린 입은 바이올린 케이스로 만들었다. 사자는 젓가락 수염과 거대한 밀짚 갈기를 가지고 있다. 파리채는 홍학 다리로, 쇠스랑은 사슴뿔로 둔갑했고 쥘부채와 안경은 각각 올빼미와 나비 날개가 되었다.
방문객들은 성경에 나오는 비를 직접 만들고, 공기를 실린더 안으로 밀어 넣어 폭풍을 움직이게 하고, 점점 불어나는 물 위로 배를 떠다니게 한다. 누구든 노아가 되어 도르래로 모래주머니를 들어 올려 방주를 만들고, 동물을 컨베이어 벨트에 얹어 대피시킨다. '난장' 같은 분위기였지만, 모든 에듀케이터들은 동물춤을 추며 아이들을 이끌면서 '노는' 것을 돕는다. 노래를 부르며, 세계의 홍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춤을 통해, 폭풍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인간의 힘을 경험하게 한다. 장애아를 위한 프로그램도 결코 소홀하지 않다. 방주를 나와, 바깥으로 나서면 스테인리스 스틸 벽에서 나오는 안개비가 무지개가 된다. 감탄사가 터진다. 캘리포니아가 물사정이 나빠지면서 그 무지개는 실내로 들어와 특수효과로 그 표현이 바뀌었지만, 무지개의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달되는 듯하다.
'노아의 방주'는 위대한 이야기의 힘으로, 폭풍우를 경험하고, 공동체를 경험하며, 무지개를 만나는 것으로 구성된, 시련, 극복 그리고 공동선을 표현한 대단한 교육적 장치인 셈이다. '노아의 방주' 설계자는 누구일까. 의외였지만, 대구 S백화점의 놀이공간 주라지(Zooraji)를 설계한 건축가 앨런 마스킨(Alan Maskin)이다.
박물관이 표현하기 힘든 가장 어려운 주제가 정체성이라고들 한다. 이곳에서는 그들을 지켜온 옛 이야기가 그야말로 정체성이 되어 위대한 민족을 만들어간다. 지금 세계는 '마인즈 온' 박물관이 대세. 이곳은 티 나지 않는 '마인즈 온' 콘텐츠의 완성작이다. 자연스럽게, 환경의 문제, 생명의 문제로 마음을 움직인다. 이곳에서 다문화시대 상생의 묘안을 봤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아기 모세를 살린 상자'라는 의미의 방주(方舟)이야기 하나가 문화 콘텐츠의 여러 의미를 살려냈다는 생각에 나는 무릎을 쳤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