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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칼럼] “국민교육헌장” 세대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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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2. 26. 17:45

정기종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1960년대와 197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자랐다. 국민이 교육의 대상으로 인식되던 한국전쟁 전후 세대로 질곡의 현대사를 겪었다. 월남전 파병에서 사상자도 나왔고 고엽제 피해로 아직 치료 중인 참전용사들도 있다. 군 내무반 생활은 엄격했고 근무여건은 현재보다 매우 열악했다. 간헐적으로 남파되는 무장공비들과의 전투도 있었다. 군사정권 반대 시위로 '녹화사업' 이름으로 징집되거나 발전의 와중에 희생된 인권 약자들도 많았다. 이 같은 '국민총화'로 대한민국은 G20 국가 중 하나로 서게 되었다. 이제는 경제발전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품격과 이미지를 높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1968년 12월 5일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로 시작된다. "헌장"을 힘들게 외우지만은 않았던 것은 암기상을 받는 자랑보다도 그 안에 공감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일제 가전제품을 최고로 알고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하던 때다.

골목식당에서는 꿀꿀이죽이 팔리고 양키시장에는 밀수품과 미군 물자가 인기였다. 그만큼 가난에서 벗어나고 국력을 길러 민족중흥의 자존심을 살려 주기를 바라는 심정은 컸다. 이 때문에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는 구절은 힘써 공부하고 일하자는 의지를 갖게 했다.

"헌장"은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지만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였고 책임과 의무는 있었지만 자유와 권리는 억압되었다. 따라서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이는" 민주적 역량의 결집은 어려웠다. 강력한 리더십 아래 경제는 발전했지만 사상과 철학의 정신적 토양은 척박해졌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기 어려운 심리적 의존성이 커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토론과 대화의 방법론을 익히지 못하고 사상의 면역력을 기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실제 이념'과 '이념을 빙자한 선동'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이념 논쟁에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보다 감정적이 되어 패닉에 빠지기 쉬웠다. 이는 이제 세계 각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새로운 세대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1990년대 문민정부로 이어지면서 사회 각 부문의 역량은 신장되었다. 그러나 "상부상조의 전통"과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가진 사회가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더구나 우리의 정치 환경은 아직 후진적이라는 지적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헌장" 시대에 있었던 '여론 조작'이나 '지역감정 조장' 그리고 '정치폭력'과 '불법정치자금' 같은 행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민의 정치적 역량배양을 저해하는 악습이다. 이것이 현재 세대교체기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반복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헌장" 세대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명분으로 걸고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한 세대가 모든 것을 일거에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가 더욱 슬기롭고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젊은 세대에 넘겨줄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덕목이 최우선일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공동가치인 자유선거에 의한 민의 수렴과 결과에의 승복이다. 이러한 법질서 과정을 무시하고 폭력과 선동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반국가 행위다. 이 때문에 아테네의 아고라 정치가 인민재판식 정치가 돼서는 안 되며 건강한 비판행위와 반헌법적 행위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겪은 내전의 역사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다양한 역량 단위가 만들어 내는 각각의 힘이 부딪히지 않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하는 것은 국가발전의 기본원리다. 그러나 극단적 대결과 폭력적 사회 분위기에서는 힘의 합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더구나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과 신(新)국제질서의 엄중한 도전이 밀려오는 중에 대한민국은 국운의 성쇠를 좌우할 중대한 시기에 서 있다.

잘못된 과정은 목적을 이룬 다음에도 오랫동안 후과를 남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중심의 정치는 극단주의로 발전하는 위험이 있다. 결국 "헌장"은 선포 4년 후에는 10월 유신으로 독재화해 비극적 결말을 맺었다. 단계적으로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했음에도 지도자 자신의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이루려는 과욕이 일탈 행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극심한 내적 투쟁은 "헌장" 세대가 보낸 기억의 정치 중의 어두운 그림자일 것이다. 따라서 기성세대는 세대를 잇는 링커로서 다음 세대가 건강하고 강한 "신념과 긍지"를 키울 수 있도록 애정을 갖고 인도해야 한다. 이들이 국제사회의 치열한 경쟁 중에 뒤처지지 않고 응전해 대한민국이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민주의 법질서 준수는 필수적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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